견당매물사

견당매물사

[ 遣唐買物使 ]

요약 신라 하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가 당(唐)나라에 파견한 무역사절.

시 당나라 초주(楚州)의 신라방(新羅坊)에서는 신라인 스스로 자치권을 행사하였고, 이들 중에는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 양주(楊州) ·소주(蘇州) ·명주(明州) 등에서 아라비아 ·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자, 당과 일본을 오가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는 자들이 많았다. 장보고는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아울러 이들의 지원을 받아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는 과정에서 해적이 신라인을 잡아다 노예로 매매하는 것을 목격하고, 귀국하여 흥덕왕에게 요청하여, 828년(흥덕왕 3) 해상교통의 관문인 완도(莞島)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대사라는 특수직에 임명되었다. 그는 반사병적(半私兵的)인 성격의 1만 해군을 거느리고 해안지대를 경비하여 해적을 일소하고 항로를 확보하여 황해와 남해의 해상권을 독점하였다.

그는 독자적으로 당 및 일본과 무역을 행하여 독립적인 경제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커다란 해상세력을 형성하였다. 당시의 무역 형태는 780년(선덕왕 2) 10월부터 사무역(私貿易)이 일체 금지되었기 때문에, 장보고는 당에 견당매물사를 보내 이들로 하여금 무역선인 교관선(交關船)을 인솔하게 하였다. 사무역이 아닌 무역의 형식은,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무역 상대국의 통치자와 예물을 교환하는 방식을 띤 공무역(公貿易)과, 이를 위하여 파견된 사신이 몸에 지니고 가는 협대무역(夾帶貿易)의 길밖에 없기 때문에, 교관선 파견은 이례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는 신라의 공무역이 장보고의 사무역에 의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이 아닌 장보고가 자신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견당매물사 ·회역사(廻易使:일본에 보낸 사절)를 보낸 것은, 그의 무역활동이 순수하게 사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간의 공식적인 것이라는 의미까지도 부여받았음을 뜻한다.

역참조항목

신라방, 회역사, 흥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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