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계제족

셈계제족

[ ─系諸族 ]

요약 구약성서 《창세기(創世記)》에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이라고 전해지는 민족.

 

셈제어(諸語) 비교연구 결과, 아카드어(語)·아무르어·가나안어·아람어·아랍어·에티오피아어를 말하는 제민족의 총칭으로서 셈족(族) 또는 셈계제족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셈제어는 원래 공통의 '원(原)셈어'에서 갈라진 것으로 생각되며 이와 관련하여 '원셈민족'의 원주지(原住地)를 탐구하고 있으나 고고학적으로는 아직 입증되지 않고 있다.

언어면에서는 ① 중부 아라비아설(說), ② 시리아설, ③ 북(北)아라비아―남(南)시리아설이 있다. 셈어는 다음의 3가지로 대별된다. ① 동(東)셈어파:아카드어(바빌로니아어·아시리아어)·아무르어(바빌론 제1왕조시대의 언어). ② 북서(北西)셈어파:우가리트어·페니키아어·헤브라이어 등의 가나안어계(語系)와 고대 아람어·성서(聖書) 아람어·나바타어·팔미라어 등의 아람어계. ③ 남서(南西)셈어파:아랍어계(남북 아랍어)와 아비시니아어계(고대 에티오피아어·암하라어)가 있다. 셈어는 고대 이집트어나 함어와의 관계가 대단히 밀접하기 때문에 공통의 조상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문자는 동셈어파는 설형문자(楔形文字)를, 북셈어파는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表音文字)를 발달시켰다. 셈문자의 원류(源流)로서 이집트의 상형문자(象形文字)가 추정되는데, 그것과 비슷한 그림문자와 표음문자를 절충한 비문(碑文)도 발견되었다.

하티문자는 설형문자와 표음문자가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페니키아의 유적 라스 샴라에서는 설형문자에서 표음문자에로의 추이를 나타내는 문서가 발견되었고 비블로스(현재의 주바일)에서는 22자의 표음문자로 된 비문도 발견되었다. 비블로스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책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후에는 성서를 지칭하게 되었다. BC 30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로의 아카드인의 이동이 셈족 최초의 이동인데, 사르곤은 BC 2600년경에 셈족 최초의 왕국인 아카드왕조를 건설하였고,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도 셈족왕조가 계속되었다. 셈족 두 번째의 이동은 BC 24세기 무렵의 아모르인, 세 번째는 가나안인, 네 번째는 BC 14세기경의 아람인의 이동이다. 특히 아람인은 서아시아 일대에 분포하여 페르시아 제국시대의 공용어도 아람어였다.

시리아인으로 알려진 아람인은 상업항해 민족으로서 오리엔트 전역에 진출하였다. '행복한 아라비아'로 불린 비옥한 예멘 지방에 살던 셈족은 BC 13세기경부터 왕국을 세웠으나 일부는 4세기경에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왕국을 건설하였다. 7세기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출현해 이슬람교를 창시하였고 그의 후계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셈족의 거주지가 건조한 사막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민족성도 보수적 경향이 강하다. 해안평야나 하천유역을 제외하고는 유목생활을 하는 주민이 많고 종족을 단위로 한 혈연적 공동체 사회를 형성했다.

개개의 가족은 부계의 가장이 통솔하여 여성의 지위는 극히 낮았다. 노년층은 존경받았으며 장로회의는 전부족 공동의 문제를 결정하였다. 정주(定住)생활의 발달과 더불어 이 제도는 없어지고 국왕과 함께 세습왕조가 출현하였다. 자연환경이나 동물의 신성(神性)을 인정하였으며, 정주민족 사이에 신(神)은 토지와 결부되어 신전(神殿)이 건설되고 제사의식이 거행되었다. 이들에게 신은 부족의 질서와 번영을 베푸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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