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관

성중관

[ 成衆官 ]

요약 고려·조선시대의 관직.

성중애마(成衆愛馬)라고도 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내시(內侍)·다방(茶房)·별감(別監)·사의(司衣)·사이(司彛)·사순(司循)·사문(司門)·사준(司樽)·사옹(司饔) 등 문반(文班)에 소속되어 숙위(宿衛)하거나 왕에게 근시(近侍)한 궁관(宮官)을 이르던 말이었다. 몽골의 간섭이 시작된 고려 후기 이후에는 궁중 시위(侍衛) 강화의 필요에 따라 둔 충용(忠勇)·우달치(迂達赤)·속고치(速古赤:시구르치)·별보(別保) 등의 시위군사까지도 성중관이라 하여, 동일 관서에 수십·수백 명씩 집단을 이루어 소속된 하급관리를 지칭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이래의 궁관(宮官)과 시위군사 이외에 녹사(錄事)·지인(知印) 등 서리(胥吏)와 별시위(別侍衛)·내금위(內禁衛)·충순위(忠順衛)·충의위(忠義衛)·충찬위(忠贊衛)·족친위(族親衛) 등에 소속된 금위군사(禁衛軍士) 및 상림원(上林園)·도화원(圖畵院)·액정서(掖庭署)·전악서(典樂署) 등의 잡직(雜職) 관서의 관리, 봉상시(奉常寺) 소속의 재랑(齋郞)·무공(武工) 등 제관(祭官), 각사(各司)의 영사(令史)·서리(書吏)·연리(掾吏)·전리(典吏) 등 이전(吏典), 사헌부(司憲府)의 감찰, 삼관(三館)의 봉례(奉禮), 각 전(殿)의 행수(行首)와 견룡(牽龍) 등 동일 관서에 집단으로 소속된 관리를 성중관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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