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od , ]

요약 넓은 의미로는 긍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가치를 갖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

그러나 좁은 뜻으로는 행위 및 의지의 규정근거이다. 이 두 가지 뜻은 때로 혼동되어, 사람들은 많은 것을 ‘좋다’고 한다. 이를테면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는 ‘보기에 좋은 것’이나 ‘사용하기에 좋은 것’도 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들은 ‘미(美)’이거나 ‘유용한 것’이며 본래적 의미에서의 ‘선’은 아니다. 본래적 의미에서의 선이란 이들 가치 있는 것에 관계되는 행위가 선택되는 경우의 근거인 것이다. 따라서 선은 본시 행위 외적(行爲外的)으로 사물에 부착된 성질로서 ‘관조(觀照)’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내적(行爲內的)으로 의식의 자기귀환(自己歸還)을 구성계기로 하는 ‘실천’의 장에서 실천을 성립시키는 근거로서 자각되는 것이다.하나의 행위는 많은 가능한 행위 가운데서 ‘지금 해야 할 것’으로서 선택되며 이 선택의 근거가 선이다. 따라서 선은 자유에서 자각되는 것으로 자유의 근거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선을 의미하는 ‘agathon(그)’과 ‘bonum(라)’이라는 말이 선의 두 가지 뜻을 나타내면서 넓은 의미에서의 선으로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의 선은 악을 의미하는 ‘kakon(그)’ ‘malum(라)’과 상대될 때, 화(禍) ·불행과 상대적인 복(福) ·행(幸)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부정(不正)을 당하는 편이 부정을 하는 편보다 좋다”고 말하면서 이를 자신의 죽음으로써 증명했을 때 선의 본성은 밝혀졌다. 이후 선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불가시(不可視)의 혼(魂)이 자기자신을 좋은 것으로 하려는 능동적 배려에 있어, 내적으로 영혼에 관계되는 것이 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이 문제상황에서 성립되었다. I.칸트도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선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목적 윤리학’을 배척하고, 선은 의지에 대하여 ‘그대는 언제나 이를 행할 것’이라고 하는 절대적 명령[定言命令]이라는 형태로 강요하는 보편적 법칙으로서 파악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것’은 오직 하나, 선을 지향하는 선의지(善意志) 뿐이다. 의지(意志)에 대하여 강요하는 이 조건 없는 명령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윤리학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