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학

서지학

[ bibliography , 書誌學 ]

요약 책을 물질적 존재로서 조사하고 연구·기술하는 과학.

오늘날 서지학이라고 불리는 것에 가까운 학문은 중국에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멀리는 한(漢)나라의 유향(劉向) 부자(父子)에서 비롯되는 목록학(目錄學), 당·송 시대의 교감학(校勘學), 고염무(顧炎武) 등이 청(淸)나라 때에 제창한 고증학(考證學) 등이 그것이다. 과학으로서의 서지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주로 영국의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뿌리를 내렸다. 프랑스인 G.F.드뷔르가 출판한 《서지교정(書誌敎程)》(7권, 1763∼1768)이 서지학의 선구적인 저술이다.

서지학의 역어(譯語)인 비블리오그라피(bibliography)라는 근세 유럽어는 그리스어의 '책'을 의미하는 비블리온(biblion)과 '기술(記述)'을 의미하는 그라페인(graphein)으로 이루어진다. 언어가 없는 곳에 문법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책이 없는 곳에 서지학을 생각할 수 없다. 서지학에 앞서서 그것을 성립시키는 것은 책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서지학을 올바르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책 그 자체의 본질을 밝혀내야 한다.

인간의 사고·감정·행위·희망 등을 문자 혹은 그림 모양으로 표현하여 지엽(紙葉), 또는 그 밖의 재료에 옮겨쓰거나 인쇄하여 그것을 한데 모아 꿰매어 하나로 합친 물질적 형태를 부여한 것이 일반적인 '책'의 의미이다. 그것은 다시 ① 표현된 내용을 주로 하느냐, ② 표현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형태를 주로 하느냐에 따라서 사용방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플라톤 저작집》은 고전이다'라고 하는 경우와 '《플라톤 저작집》의 독일어 초판은 진귀한 책들이다'라고 하는 경우, 책의 의미가 서로 달라진다. 전자에서 중요한 것은 《플라톤 저작집》의 내용이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그 간행 연도나 판식(版式) 혹은 지질(紙質) 등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듯 책은 그 내용, 즉 초물질적 형태와 그 용기(容器), 즉 물질적 형태의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책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혹은 지역에 따라 저마다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책의 물질적 형태를 밝히는 서지학의 방법도 그에 적응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양의 서지학과 유럽의 서지학이 이질적 기반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견해로서, 그 방법론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도 공통된 것이다. 영국의 서지학자 S.게이즐리는 1932년 10월 영국서지학회 회장 취임기념강연에서 서지학 성립의 5단계를 ① 수집(蒐集), ② 열거(列擧), ③ 기술(記述), ④ 분석(分析), ⑤ 결론(結論)으로 나누었다. 그 궁극의 목적은 정보·전달에 즈음하여 물질적 수단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여 기원(起原)·역사 및 본문(本文)에 관한 여러 문제를 될 수 있는 한 해결하는 데 있다. 독일이나 미국의 서지학은 영국과 비교하여 대체로 도서관학적(圖書館學的)인 색채가 짙어 비판보다 기술(記述)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도 근년에 서지학회가 창립되고 적지 않은 학자들이 사본·간본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