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서연

[ 書筵 ]

요약 황태자나 왕세자를 위한 교육제도.

중국에서 유교가 발달함에 따라 황제를 교육하는 경연과 황태자를 교육하는 서연이 발달하였는데, 대략 북송(北宋) 때에 완성되었다. 한국에는 고려 중엽에 경연과 함께 도입되었다. 다만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기간, 즉 충렬왕 때부터 창왕 때까지는 경연의 명칭이 서연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혼동하기가 쉽다. 서연 역시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강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담당하였다.

그 직제는 당나라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를 고려가 도입하고 조선왕조가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세종 때는 집현전 관원의 일부가 강의를 전담하도록 하였으며, 세조 때 세자시강원을 설치한 후에는 여기서 담당하였다. 여기에 소속된 관리들 가운데 당상관은 모두 다른 관직을 가진 겸관이었고, 당하관은 서연강의만을 전담하는 녹관이었다.

관원 가운데 정1품인 사(師:영의정)·부(傅:좌우의정)와 종1품인 이사(貳師:좌우찬성)는 세자의 교육을 감독하였고, 정2품인 빈객과 종2품인 부빈객 각 2명은 강의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당하관인 보덕(輔德:종3품)·필선(弼善:정4품)·문학(文學)·사서(司書:정6품)·설서(說書:정7품) 등 약 10명은 강의를 전담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보덕을 정3품으로 승격시켰고, 찬선(贊善:정3품)·진선(眞善:정4품)·자의(諮議:정7품) 각 1명을 신설하였으며, 보덕 이하를 증원하였다. 강의 교재는 경서와 역사책이 기본이었다.

경서로는 4서를 공부하였고, 5경 중에서는 《상서》와 《시경》을 주로 공부하였다. 역사책으로는 통감과 강목이 중심이었으며, 사략(史略)·송감(宋鑑)·역대군감(歷代君鑑)도 아울러 공부하였다. 세자의 나이가 아주 어릴 때에는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효경》 등을 먼저 공부하였다.

그 밖에 성리학 서적도 공부했는데, 대체로 세자의 나이에 따라서 교과과정을 가감하였다. 예를 들면 제왕학(帝王學)의 핵심인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위한 책뿐이었다. 강의는 먼저 세자가 지난 시간에 공부한 대목을 한번 암송한 후 책을 보면서 번역하였다. 다음에 당하관 가운데 상급자가 공부할 대목을 읽고 번역하고 세자가 이를 되풀이하였다. 끝으로 보충설명을 하는데, 이때는 당직 서연관 전원이 참석하였다. 세자의 암송은 본문에 한하였으며, 참석한 서연관 중 관직이 높은 사람이 등급을 매겼다.

강의는 하루에 세 번(조강·주강·석강) 실시하였는데, 세자가 어릴 때는 조강에서 공부한 내용을 주강과 석강에서 복습하였다. 여름과 겨울에는 대개 방학이 있었으며, 제사와 왕의 생일 같은 공식행사가 있을 때는 휴강하였다. 강의할 때 경연관과 세자의 자리는 함장(函丈)이라 하여 열 자의 거리를 두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세자가 어릴 때는 상번이 세자 곁에서 글자를 짚어 가며 가르쳤다.

1∼2품인 사부와 이사가 참석할 때에는 세자가 이들을 스승의 예로 대하였다. 서연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서연일기에 기록하였으며, 강의교재와 참고도서는 장서각에 두었다.

참조항목

서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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