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국

상주국

[ 上柱國 ]

요약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사용된 관명(官名)으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부여되는 훈직(勳職)이었다. 고려에서는 제11대 왕 문종 통치 시기부터 첫째 등급의 훈위(勳位)에 해당하는 정이품에 그 명칭을 사용하였다.  

주국(柱國)과 상주국(上柱國)은 중국 고대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사용된 관직 명칭이다. 초(楚) 나라에서 커다란 전공(戰功)을 세운 자에게 상주국이라는 훈호(勳號)를 부여한 데에서 비롯되어,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부여되는 훈작(勳爵)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북위(北魏)에서는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이라고 불렸으며, 승상(丞相)의 윗자리로 하였다. 서위(西魏) 문제(文帝) 때에는 우문태(宇文泰)를 비롯한 8인이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의 훈호(勳號)를 받아 이들을 ‘8주국(八柱國)’이라고 하였다. 당(唐) 나라 때에는 고구려의 27대 영류왕(榮留王, 재위 618-642)이 중국인 포로 1만여명을 돌려보내자, 624년 그에게 상주국(上柱國)의 훈호(勳號)를 부여한 바 있다.

고려에서는 제11대 왕 문종(文宗, 재위 1046-1083) 때부터 사용되었다. 당시 고려의 상주은 정이품(正二品) 에 해당하는 첫째 등급의 훈위(勳位, 공로에 따른 벼슬)로, 주국(柱國)은 종이품(從二品)에 해당하는 둘째 등급의 훈위(勳位)로 정해졌다. 또한 상주국과 주국(柱國)은 주로 고려 왕족(王族)들에게 부여되는 명예직으로 식읍(食邑)은 함께 부여되지 않았다. 이후 고려 제 25대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에 훈작제도가 혁파되면서 폐지되었다.

역참조항목

식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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