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사

삼학사

[ 三學士 ]

요약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와 화의를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하다가 인조가 항복한 뒤 중국 선양으로 끌려가 참형당한 홍익한·윤집·오달제 등 세 명의 학사(學士)를 가리킨다.
홍익한 충렬각

홍익한 충렬각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를 가리킨다. 1636년(인조 14) 12월 청태종(淸太宗)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에 침입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을 포위하였을 때, 조정 신하들 사이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하였다. 최명길(崔鳴吉)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主和派)는 청나라와 화친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김상헌(金尙憲)을 중심으로 한 주전파(主戰派)는 결사 항전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주화파의 주장이 우세를 점하였다. 이에 1637년 인조가 남한산성 밖으로 나와 청나라에 항복하였고, 홍익한 등 세 사람은 척화(斥和)의 주모자로 중국 선양[瀋陽]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선양에서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척화의 뜻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결국 참형(斬刑)을 당하였다. 조정에서 이들의 충절을 기려 홍익한에게는 충정(忠正), 윤집에게는 충정(忠貞), 오달제에게는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모두 영의정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