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채

삼채

[ 三彩 ]

요약 도기(陶器)의 기법 및 그 제품.

단순히 3색의 유약(釉藥)을 칠한 도자기라는 뜻에서 발전하여 질그릇에 직접 색유약을 칠한 것을 말한다. 특히 중국 당(唐)나라의 당삼채(唐三彩)는 삼채의 대표로 꼽히며, 백색의 점토로 된 질그롯 위에 선명한 녹유(綠釉) ·황유(黃釉) ·남유(藍釉) ·투명유(透明釉) 등을 칠하여 중국 도자기 사상 최초의 화려한 도기를 탄생시켰다.

시기는 대략 670∼680년경 고종(高宗) 말년으로 추측된다. 요적(窯跡)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허난성[河南省] ·산시성[陝西省] 등 화북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고 그 대부분은 죽은 자의 부장품으로 매장된 명기(明器:죽은 자와 함께 무덤에 묻는 그릇)이다. 당삼채 계보는 송(宋)나라 때도 계승되어 송삼채(宋三彩) ·요삼채(遼三彩)로 불렸으며, 당나라 때 화려하고 자유스러운 감각은 줄어들고 구상적인 무늬를 꾸며서 만든 것 같은 실용성이 강한 작품이 되었다. 두 번 굽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삼채는 명나라 징더전요[景德鎭窯]에서 발전했다.
명삼채(明三彩)는 백색 그릇 바탕에 직접 투명성 색유(色釉)를 가한 것으로 부조(浮彫) 또는 선조(線彫)로 무늬를 그렸고 색유는 빛깔별로 나누어 염색했다.

청(淸)나라 때에 와서는 강희(康熙) 연간에 소삼채(素三彩)라는 자기가 성행했다. 이것은 질그릇 바탕에 무색 백유(白釉)를 엷게 칠한 다음 여기에 짙은 채색을 가한 것이며, 유약 밑에는 때로 선각(線刻)이 베풀어지는 수가 있다. 강희 연간 이후 소삼채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그 수법은 유약 위에 채색하는 오채(五彩)와 거의 비슷하다.

역참조항목

녹유, 두채, 명삼채, 법화, 분채

카테고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