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 Bourgogne ]
- 요약
프랑스 동부에 있던 레지옹(Region).
![부르고뉴대공궁전 정문 입구](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39/20181007210345384_QWG3QJPDV.jpg/230610.jpg?type=m250&wm=N)
부르고뉴대공궁전 정문 입구
위치 | 프랑스 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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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31582 |
시간대 | CET (UTC +1) |
행정구분 | 4데파르트망(Departement) |
행정관청 소재지 | 17 boulevard de la Tremouille, DIJON, La france |
홈페이지 | http://www.cr-bourgogne.fr/ |
주도 | 디종(Dijon) |
인구(명) | 1,626,000(2007년) |
주도는 디종(Dijon)이다. 영어로는 버건디(Burgundy)라고 한다. 중세에는 이 이름을 가진 나라가 있었으며 지리적 구역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구역이다. 북쪽은 샹파뉴, 동쪽은 프랑슈콩테, 남쪽은 중앙산지, 서쪽은 셰르·루아레와 접하며, 욘·손에루아르·코트도르·니에브르의 4데파르트망(Department)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을 부르기뇽이라고 한다. 남동부의 손강 유역은 비옥한 평야이고, 서부의 구릉지대에는 포도밭이 많아, 여기서 만드는 포도주는 ‘부르고뉴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중앙부의 코트도르 구릉·모르비앙 산지·랑그르 고원을 분수령으로 하여 남동부는 론·손 수계(水系)에, 북서부는 센·루아르 수계에 속한다. 이곳은 남프랑스와 플랑드르∼로렌 간, 또는 파리와 스위스 간 남북·동서 교통의 요지이다.
부르고뉴라는 이름은 5세기 중엽에 이 지방을 중심으로 론강과 손강의 유역에 정착한 게르만족의 부르군트인에 유래한다. 7~9세기까지 부르군트 왕국은 론강 및 손강 유역에서 프로방스에 이르는 넓은 판도를 가지고 있었다. 9세기 분열에 즈음하여 북쪽 고지 부르군트 서부가 부르고뉴 공작령이 되어(동부는 백작령, 후에 프랑슈콩테), 이것이 오늘날 부르고뉴가 되었다. 카페왕조에 속하였다가(938∼1032), 이어서 독립한 카페계의 제1부르고뉴가(家:1332∼1361)의 지배를 받았다. 제2부르고뉴가(1363~1477)는 1세기 동안에 필립 르 아르디, 장 상 푀르, 필립 르 봉, 샤를 르 테메라르 등의 4명주(名主)를 배출하면서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 경제력에서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서유럽 문명의 한 중심이 되었으나, 샤를이 전사한 후 프랑스 왕국에 합병되었다. 고대 이래로 상업적 중요 위치에도 불구하고 남부의 광산지대를 제외하면 근대산업의 발달이 뒤졌다. 중세에 문화적 중심지였던 디종도 근세에는 농산물 가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조용한 지방도시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철도의 발달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부르고뉴 본문 이미지 1](https://img-api.cboard.net/img_n.php?image_url=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17/20180221223712051_LCSBN5W9H.gif/78006_0.gif?type=m4500_4500_fst&w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