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보청

부보청

[ 負褓廳 ]

요약 조선시대 부보상을 관장한 단체.

조선 전기부터 조직을 형성하고 직접·간접으로 권력과 관계를 맺어 오던 부상청(負商廳)과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보상단(褓商團)을 통합, 정부의 관리와 보호 아래 두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이들 부보상은 조선 건국 때부터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권을 행사하는 대신 정부의 역(役)이나 국난에 동원되기도 하였는데, 1866(고종 3)년에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병인양요(丙寅洋擾)에 동원되어 프랑스 함대를 격퇴하는 데 한 몫을 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8도(道)의 부보상을 모아 부보청의 감독을 받게 하였는데, 흥선대원군의 장남 이재면(李載冕)이 청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1883년 혜상공국(惠商公局) 설치로 보상과 부상이 완전히 통합, 군국아문(軍國衙門)에 소속되었다가 1885년 상리국(商理局)으로 고치면서 부상(負商)을 좌단(左團), 보상(褓商)을 우단(右團)으로 고치고 예속시켰다.

1899년(광무 3) 다시 상무사(商務社)로 이속시켰다가, 1904년 진명회(進明會)로, 이어 공진회(共進會)로 소속을 바꾸는 등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중앙권력과 밀착, 한국 근대사의 주요 사건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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