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두앵

보두앵

[ Baudouin ]

요약 플랑드르 지방을 영유한 귀족명.

보두앵 1세 철완왕(鐵腕王)이 카롤링거왕조의 샤를 2세 독두왕(禿頭王)의 딸과 결혼하여, 864년 플랑드르백작으로 봉하여진 이후, 플랑드르백작이라고도 하였다. 그 후 9대에 걸쳐서 같은 이름의 백작이 플랑드르를 지배하였다. 4세 미염왕(美髥王:1035 사망)은 플랑드르 지방에 정기시장(定期市場)을 개설하였고, 5세 유화왕(柔和王:1067 사망)은 프랑스왕 필리프 1세의 유소기(幼少期)에 섭정(攝政)을 지냈으며, 또한 그의 딸은 잉글랜드의 윌리엄 1세의 왕비가 되었다.

8세 용감왕(勇敢王)은 에노 백작령을 병합하여 에노백작인 동시에 보두앵 5세로 호칭되었다. 9세(1206경 사망)는 제4회 십자군에 출정하여 콘스탄티노플에서 1204년에 라틴제국 황제로 옹립되어 1세라 호칭하였으나, 1205년에 그리스 및 불가리아의 싸움에서 포로가 된 후 소식이 끊어졌다. 그 후 카페왕가 초기의 프랑스와 싸워 아르투아를 잃고(1191), 프랑스왕 지배하의 백작령이 되었으나(1237), 최후의 플랑드르백작 루이 드 말이 죽은 후에는 그의 딸 마르그리트의 남편인 부르고뉴공작 필리프의 수중에 지배권이 옮겨져 플랑드르는 독립을 상실하였다(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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