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뷔스 헨드리퀴스 호프

야코뷔스 헨드리퀴스 호프

요약 네덜란드의 화학자. 물리화학의 창시자이며 제1회 노벨화학상 수상자이다. 입체화학의 시초에 기여하였으며, 반응속도론, 화학평형의 문제, 친화력(親和力) 문제 등에 처음으로 학문적 체계를 부여하였다. 또한 삼투압의 연구에 의하여 용액론(溶液論)을 수립하였다.
야코뷔스 헨드리퀴스 호프

야코뷔스 헨드리퀴스 호프

원어명 Jacobus Henricus van't Hoff
출생-사망 1852.8.30 ~ 1911.3.1
국적 네덜란드
활동분야 화학
출생지 네덜란드 로테르담
주요수상 노벨화학상(1901)

로테르담 출생. 물리화학의 창시자이며 제1회 노벨화학상 수상자이다. 소년시절부터 문학 ·미술을 좋아하고, 자연과학에 뛰어났으며, 콩트의 실증철학에 감화를 받았다. 위트레흐트대학과 본 및 파리의 대학에서 케쿨레 ·뷔르츠 등에게 배웠다. 최초의 업적은 22세 때 쓴 유기화합물의 구조식을 공간에 확장한 논문으로, 파스퇴르 ·케쿨레 등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탄소원자를 중심으로 하는 입체적 사면체 구조를 제창하고, 부정탄소원자(不整炭素原子)의 개념을 도입, 광학활성과의 관계를 밝힌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입체화학의 시초였다.

1876년 위트레흐트대학의 강사, 1877년 암스테르담대학 강사, 1878년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18년 동안 재직하면서 물리화학적 연구에 몰두하여 반응속도론, 화학평형의 문제, 친화력(親和力) 문제 등에 처음으로 학문적 체계를 부여하였다. 또한 삼투압의 연구에 의하여 용액론(溶液論)을 수립하였다.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물리화학의 고전적인 분야는 거의 그와 오스트발트, 아레니우스 세 사람이 이루어 놓았다고 할 정도이다. 이 세 사람 가운데서도 그의 독창성에 의한 것이 많았다. 이들 세 사람은 같이 협력하여 《물리화학 잡지 Zeitschrift für physikalische Chemie》(1887)를 간행하였다. 1896년 베를린 과학아카데미 및 베를린대학 명예교수로서 독일에 초청되어, 슈타스푸르트 암염층(岩鹽層)을 상규칙적(常規則的)인 입장에서 연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