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외 태피스트리

바이외 태피스트리

[ Bayeux tapestry ]

요약 1066년에 일어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이야기를 그림으로 묘사해 나타낸 자수 작품으로, 프랑스 바이외의 바이외 태피스트리 박물관(Musée de la Tapisserie de Bayeux)에 소장되어 있다. 11세기의 복장과 무기, 풍습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

바이외 태피스트리

원어명 Tapisserie de Bayeux
국가 프랑스(France)
지정일 2007년
분류 세계기록유산
소재지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 레지옹, 칼바도스(Calvados) 데파르트망, 바이외(Bayeux)

제작 시기와 방식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너비 50cm, 길이가 68.38m에 이르는 거대한 자수작품으로 아홉 개의 천을 이어서 만들어졌다. 아마포(亞麻布)에 푸른색ㆍ붉은색ㆍ황색 등의 염료로 물들인 털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으며, 형체를 뚜렷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윤곽선 안쪽은 실로 촘촘하게 감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창과 화살 등은 돌출되어 보이도록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다.

한때는 잉글랜드를 정복한 윌리엄 1세(William I)의 왕비 마틸다 플랑드르(Matilda of Flanders)가 기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마틸다 왕비의 태피스트리(La Tapisserie de la Reine Mathild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윌리엄 1세의 이복동생이자 바이외의 주교였던 오동 드 바이외(Odon de Bayeux, 1030?~1097)가 주도하여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동이 1077년에 건립한 바이외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Bayeux)에 태피스트리가 장식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오동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 태피스트리 안에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이다.

태피스트리는 바이외 대성당에 보관되고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 때에는 무기를 덮는 천으로 사용되면서 훼손될 위험에 놓이기도 했다. 1803년에는 잉글랜드 침공을 추진하던 나폴레옹이 태피스트리를 파리로 가져가 지금의 루브르미술관인 나폴레옹박물관(Musée Napoléon)에 전시하기도 했으나, 곧 다시 바이외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4년에도 태피스트리는 당시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에 의해 루브르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연합군이 프랑스를 탈환하기 직전에 독일군은 태피스트리를 독일로 빼돌리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태피스트리는 다시 바이외로 옮겨져, 바이외 태피스트리 박물관에 보존ㆍ전시되었다.

구성과 내용

바이외 태피스트리에는 1064년부터 1066년까지 윌리엄 1세가 헤이스팅스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앵글로색슨 왕조의 해럴드 2세(Harold II)에게 승리를 거두고 잉글랜드를 정복할 때까지의 주요한 사건들이 58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나타나 있다.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을 합리화하기 위해 승자인 윌리엄 1세 측의 주장에 기초해 내용이 짜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자식이 없던 참회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가 노르망디 공국의 군주이던 윌리엄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해럴드 2세를 보냈다는 이야기로 내용이 시작된다. 그리고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가 전사하고, 그의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원래는 그 뒤에 일어난 사건을 나타낸 6m 정도의 분량이 더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학자들은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 장면이 표현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 장면에 623명의 인물과 202마리의 말, 55마리의 개, 49개의 나무, 41척의 배, 1량의 수레, 그밖에 500여 마리의 새와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각 장면마다 내용을 밝히고 있는 라틴어 문장이 덧붙여져 있다.

역사적 의의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중세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일 뿐 아니라, 영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담고 있기 때문에 19세기부터 매우 중시되었다. 1816년 영국의 런던고고학자협회(Society of Antiquaries of London)는 기록화가인  찰스 스토타드(Charles Stothard, 1786~1821)에게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모사하는 일을 맡겼다. 찰스 스토타드는 바이외를 방문해 태피스트리를 매우 정밀하게 모사해 그렸고, 제임즈 바자이어 주니어(James Basire jr, 1769~1822)는 그 그림을 판화로 제작했다. 런던고고학자협회가 이를 책으로 출간하면서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한편, 2018년 1월 영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이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영국에 대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영국은 여러 차례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대여를 프랑스에 요청해왔지만,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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