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밀턴

존 밀턴

[ John Milton ]

요약 《실낙원(失樂園)》의 저자로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평가되는 영국 시인. 최초로 영어로 쓴 걸작시 《그리스도 강탄의 아침에》는 종교적 주제에 있어서나 기교적 원숙에 있어서 성년에 도달하였고 또 그의 장래의 방향을 선언한 작품이었다.
출생-사망 1608.12.9 ~ 1674.11.8
국적 영국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영국 런던
주요작품 《실낙원》, 《복낙원(復樂園)》, 《그리스도 강탄의 아침에》(1629)

런던 출생. 대서사시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의 저자로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평가된다. 신흥 중산계급인 공증인·금융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로마 가톨릭교도로 자영농민이었는데, 아버지가 신교로 개종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절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턴은 작곡에 재능이 있던 아버지로부터 청교도적인 강렬한 기질과 음악 애호의 소질을 이어받고 문예부흥적인 교양을 몸에 익혔다. 7세에 성 바울 학원에 입학하여 라틴어·그리스어·헤브라이어를 배웠고, 청교도 신학자 T.영으로부터 신학 지도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문주의와 청교도주의가 밀턴의 생애와 사상의 틀이 되었던 것이다. 1625년 케임브리지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하였는데, 그의 단정하고 수려한 용모와 청순한 생활태도 때문에 ‘크라이스트대학의 숙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미 이때의 밀턴의 라틴어 시는 다른 어떤 영국인에게도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있었다. 1626년에 쓴 짧은 반가톨릭적인 서사시 《11월 5일》에서 생생하게 악마와 지옥을 묘사하였다.

최초로 영어로 쓴 걸작시 《그리스도 강탄의 아침에》(1629)는 종교적 주제에 있어서나 기교적 원숙에 있어서 성년에 도달하였고, 또 그의 장래의 방향을 선언한 작품이었다. 1631년에 발표한 《쾌활한 사람》과 《침사(沈思)의 사람 Il Penseroso》은 엄격한 청교도적 정신과는 아주 대조적인 문예부흥적인 향기가 높이 풍기는 우미(優美)한 심정을 토로한 작품이다. 이때부터 아버지가 희망하였던 성직자가 되는 길을 버리고, 시작에 전념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1632∼1638년의 약 6년간 런던 서쪽 교외의 호튼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그의 위대한 테마인 선악 갈등의 최초의 연극적 표현이며, 후기의 3대작의 시풍을 암시한 가면극 《코머스 Comus》(1634)와, 신의 섭리를 소원하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사는 결의를 피력한 목가적 작품이며 불의의 해난사고로 죽은 친구를 추도한 시 《리시다스 Lycidas》(1637)를 발표하였다. 1638년 대륙으로 건너가, 파리에서는 그로티우스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갈릴레이와 알게 되었으나, 고국의 정치적 동란이 위급함을 듣자 그리스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1639년 귀국하였다.

밀턴의 생애를 크게 3기로 나눌 때, 이때까지를 제1기, 정치적 위기에 휩쓸려 논쟁으로 지샌 그 후의 20년간이 제2기, 그 이후의 시적 원숙의 시기가 제3기가 된다. 귀국 후 처음에는 사학(私學)을 열기도 하고 집필준비를 하기도 하였으나, 마침내 시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청교도혁명과 크롬웰의 공화제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그의 저작의 5분의 4를 차지하는 산문 작품(1641∼1660)은 3종류로 대별된다. 제1은 새로운 예루살렘의 도래를 믿고, 감독제도하에 있던 영국 국교회를 비판하여 성서중심주의를 전개한 여러 논문이다. 그리고 제2는 M.파우엘과의 불행한 결혼을 경험하고, 자연과 이성을 근거로 하여 성서의 권위에 도전한 4편의《이혼론》이다. 마지막으로 제3은 교육론과 검열 없는 출판의 자유를 주장한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1644) 외에 찰스 1세의 처형을 지지하고 크롬웰의 라틴어 비서관이 되어 공화제를 옹호한 일련의 논쟁문서, 즉 《왕과 위정자의 재임》(1649)과 《우상파괴자 Eikonoklastes》(1649), 《영국 국민을 위해 변호하는 서(書)》(2편, 1651, 1654) 등이다.

이들 작품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전유럽에 알려졌다. 그러나 1652년에는 지나친 격무로 말미암아 시력(視力)을 잃었다. 1660년이 되자 그의 노력도 보람없이 공화제가 좌절되고 왕정이 복고되었다. 따라서 그는 신변이 위험해지고 완전실명의 불행한 처지에 놓여져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가 그의 생애 중의 제3기에 해당하며, 기적적으로 처형을 면하게 되어 만년의 3대작을 내놓게 된 것이다.

인간의 원죄(原罪)와 그 죄로 인한 낙원상실의 비극적 사건을 다룬 대서사시 《실낙원》은 1667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모럴은 바로 밀턴 자신이 말한 것처럼 “영원의 섭리를 설파하고, 인간에 대한 신의 길의 정당함을 역설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작중에서 활약하는 악마 사탄의 강렬한 성격 때문에 때로 반대의 인상을 주기도 하나, 대체로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내놓은 《복낙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과 《투사 삼손 Samson Agonistes》은 1671년에 1권으로 출판되었다. 《복낙원》은 광야에서 그리스도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그가 최후의 시련에도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 준 대서사시로, 더욱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역할로서 인간이 견고한 성실과 신의 의지에 대한 겸손한 순종을 가지고 행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친 것이고, 《투사 삼손》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영웅 삼손이 자신의 비참함과 치욕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상태에서, 마음을 돌이켜 사심(私心) 없는 겸손과 억제를 배워 정신적으로 힘을 회복한 결과, 자신을 재차 신에게서 선택받은 전사(戰士)라고 느끼게 된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 외에 이단(異端)의 신학을 포함한 《그리스도교 교의론(敎義論)》(1658∼1660), 미완성의 《영국사 History of Britain》(1670), 《간이 라틴어 문법》(1669)과 《논리학》(1672)의 교과서, 《사신집(私信集) Epistolae Familiares》과 《연설집 Prolusiones Oratoriae》(합본, 1674) 《모스크바 소사(小史) A Brief History of Moscovia》(1682) 등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T.S.엘리엇 등에 의해서 그 과도한 형식미가 비판되었으나, 그 낭랑한 장중체와 강직한 단순체를 미묘하게 가려 썼으며, 표현에 있어서의 완만함과 급격함을 조화있게 뒤섞은 유려한 리듬에 의해서 성서나 고전 고대 및 르네상스기의 문학을 거대한 작품 속에 수록하여 집대성한 《실낙원》은 오늘날까지도 그 위대한 문학적 고전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존 밀턴 연보
출생 1608.12.9~ 사망 1674.11.8

1608

12월 9일 런던 출생.

1625

케임브리지대학 크라이스트 칼리지 입학.

1626

짧은 서사시 《11월 5일》에서 악마와 지옥을 묘사.

1629

영어로 《그리스도 강탄의 아침에》 집필.

1631

《쾌활한 사람 L'Allegro》, 《침사의 사람 Il Penseroso》 발표.

1634

가면극 《코머스 Comus》 발표.

1637

《리시다스 Lycidas》 발표.
자연과 이성을 근거로 하여 성서의 권위에 도전한 4편의《이혼론》 발표.

1644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 발표.

1649

《왕과 위정자의 재임 The Tenure of Kings and Magistrates》, 《우상파괴자 Eikonoklastes》 발표.

1651

《영국 국민을 위해 변호하는 서 Defensio pro Populo Anglicano》 1편 발표.

1654

《영국 국민을 위해 변호하는 서》 2편 발표.

1667

실낙원 Paradise Lost》 출간.

1671

복낙원 Paradise Regained》과 《투사 삼손 Samson Agonistes》 1권으로 출판.

1674

11월 8일 런던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