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

무성영화

[ 無聲映畵 ]

요약 녹음이 따르지 않는, 유성영화가 생기기 이전의 영화.
찰리 채플린의 첫 연설

찰리 채플린의 첫 연설

사일런트영화라고도 한다. 1895년 프랑스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시네마토그래프가 공개된 것을 영화의 시발점이라 한다면, 본격적으로 유성화(化)되는 1927년까지의 영화는 무성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창안 당시 카메라로 촬영되어 스크린에 투영되던 ‘움직이는 사진’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수록한 실사단편(實寫短篇)이나 짤막한 뉴스 종류였으나 이어 카메라의 성능을 이용한 트릭영화를 고안하게 되어 《달나라 여행》과 같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 다음 인간을 주체로 한 극형식의 영화가 창안되었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일어나는 장면만을 촬영한 것이었으나 차차 영화의 독자적인 표현을 구사하게 되고 내용도 다채로워져서 여러 나라에서 독특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각국의 작품경향을 개괄적으로 보면 프랑스는 인정극 ·범죄극, 이탈리아는 사극 ·정서극, 독일은 괴기 ·환상 ·애욕극, 영국은 기록영화, 북유럽은 신비영화, 러시아는 국책(國策)의 보급영화를 주로 만들었으며, 미국에서는 바이타스코프가 발명됨에 따라 프랑스와 같은 시기에 무성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여 밝은 오락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 사이에 만들어진 우수한 무성영화로 프랑스의 《달나라 여행》 《지고마》 《전쟁과 평화》 《광열(狂熱)》 《철로의 백장미》 《여배우 나나》 《안달루시아의 개》 《잔다르크의 화형》, 미국의 《국민탄생》 《키트》 《우매한 아내》 《포장마차》 《빅퍼레이드》 《황금광시대》, 독일의 《니벨룽겐》 《최후의 인간》 《기쁨이 없는 거리》, 이탈리아의 《쿠오바디스》 《카빌리아》 《불》 러시아의 《전함 포템킨》 《어머니》 《세계의 여섯째 주(洲)》, 북유럽의 《파도 이는 날》 《주인》 《영혼의 불멸》 등이 있다.

영화는 빛과 그늘, 형상을 율동미화(律動美化)하는 예술이라고 한 독일과 영화의 생명은 몽타주에 있다는 러시아영화제작자들의 태도와 작품경향은 무성영화의 성숙에 공헌하였다. 이것은 영화미학(映畵美學) 확립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한국에서 ‘활동사진’이라 불린 초기의 무성영화는 이 땅에 전화 ·전기 ·전차 ·철도가 들어와 개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칠 무렵인 1903년 6월 23일자 《황성신문》에 ‘활동사진광고’라는 제호의 광고가 실림으로써 도래(渡來)하였다. 초기 무성영화를 한국에 들여온 것은 일본 요시자와상회[吉澤商會]의 순회영화반이다. 이것을 영미엽연초회사(英美葉煙草會社)와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는 담배와 전차(電車) 유객(誘客)을 위한 선전용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들여온 단편 무성영화로는 프랑스계(系) 시네마토그래프인 《포병열차》 《기차》 《해수욕》 《이발소의 사고》 《여급과 손님》 등이 있고, 미국계 바이타스코프 《나이아가라》 《뉴욕의 대화재》 《메리 여왕호의 비극》 등이 있다.

1910∼20년 사이에는 《지고마》 《파우스트》 《나폴레옹》 《프레데릭백작》 등 훌륭한 내용을 가진 것들이 인기를 끌었다. 1919년 10월 《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라는 연쇄극(連鎖劇:무대에서 나타낼 수 없는 장면을 영화로 보이는 극)에 삽입되는 약 1,000피트의 활동사진(무성영화)이 최초로 한국인의 손에 의해 제작 상영되어 한국영화의 효시가 되었다. 1919년 10월 20일자 《매일신보》는 이에 대한 시사소감(試寫所感)에서 “…서양사진에 뒤지지 않을 만큼 되어 있고 배우활동도 상쾌하고 신이 날 만큼 되었더라”고 평하였다. 1923년 완전한 무성영화 《월하(月下)의 맹세》가 윤백남(尹白南)에 의해 제작되어 이 때부터 1935년 첫 유성영화 《춘향전》이 제작되기까지 화려한 무성영화시대를 이루었다.

이 사이 《춘향전》(무성) 《장화홍련전》 《비악(悲惡)의 곡》 《홍보전》 《심청전》 《개척자》 《멍텅구리》(최초의 희극영화) 《금색야차(金色夜叉)》 등이 만들어졌고, 1926년 나운규(羅雲奎)의 《아리랑》이 제작되면서 무성영화는 절정을 이루었다. 외국 무성영화에서는 보조수단으로 자막을 삽입하여 대화나 줄거리의 진행을 나타냈으나, 한국에서는 무성영화가 수입되고 스스로 제작하면서부터 변사(辯士)라는 새로운 직업인이 등장하여 혼자서 대화를 주고받고 정황을 설명하였다. 이 변사의 감격조(感激調) ·비탄조 ·강조조 등의 어조(語調)는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최루탄적 구실을 하였으며, 변사의 효과를 돋우기 위해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