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오가이
[ Mori Ōgai , 森鷗外(삼구외) ]
- 요약
일본의 소설가·평론가·군의관. 19세기 후반 당시 신문학의 개척기였던 일본문단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평론집·역사물 등 다방면에 저술이 있다.
![모리 오가이 사진](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37/20181006033804804_CW3J8TTBC.jpg/570830.jpg?type=m250&wm=N)
모리 오가이 사진
원어명 | もり おうが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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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 1862 ~ 1922 |
본명 | 린타로[林太郞] |
국적 | 일본 |
활동분야 | 문학 |
출생지 |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
주요저서 | 《무희(舞姬)》(1890) 《기러기》(1915) 《아베 일족[阿部一族]》(1913) |
본명 린타로[林太郞]. 시마네현[島根縣] 출신. 1881년 도쿄[東京]대학 의학부 졸업 후 독일에 유학하였다. 1888년 귀국 후 육군대학 교관을 거쳐 군의총감·의무국장 등을 역임하고 1916년 퇴역, 제실박물관장(帝室博物館長) 겸 도서관장·제국미술원장(帝國美術院長) 등을 지냈다.
이와 같은 경력과는 별도로 그는 독일유학 때부터 문학에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당시 신문학의 개척기였던 일본문단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문체(雅文體) 소설 《무희(舞姬)》(1890), 독일에서 귀국 후 발표한 번역시 《모습》(1889)은 일본문단에 낭만적인 정취를 불어넣었다.
1901년에 번역한 안데르센의 《즉흥시인(卽興詩人)》은 원작 이상이라고 높이 평가되었으며, 소설에서는 《기러기》 《아베 일족[阿部一族]》 《산쇼다유[山椒大夫]》 등 수십 편의 명작을 남겼다.
한때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와의 몰이상논쟁(沒理想論爭)은 유명하며,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의학 논쟁에서도 의학계 원로를 가차없이 논박하기도 하였다. 평론집·역사물 등 다방면에 저술이 있으며, 1956년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에서 발간한 《모리 오가이전집》은 53책의 방대한 분량에 이른다.
모리 오가이 연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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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62.2.17~ 사망 1922.7.9 | |
1862 |
2월 17일 일본 시마네현 출생. 본명 린타로. |
1881 |
도쿄대학 의학부 졸업. |
1884 |
4년간 독일에서 유학. |
1888 |
귀국 후 육군대학 교관, 군의총감·의무국장 등 역임. |
1889 |
번역시 《모습》 발표. |
1890 |
아문체 소설 《무희》 발표. |
1901 |
안데르센의 《즉흥시인》 번역. |
1907 |
육군군의 총감 육군성 의무국장 역임. |
1913 |
소설 《아베 일족》 발표. |
1915 |
소설 《기러기》 발표. |
1916 |
퇴역 후 제실박물관장 겸 도서관장·제국미술원장 등 역임. |
1922 |
7월 9일 신장 쇠약으로 사망. |
1956 |
이와나미 서점에서 《모리 오가이전집》(총 53권) 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