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타전쟁

마라타전쟁

요약 18-19세기에 걸쳐 영국과 마라타 왕국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마라타 왕국이 영국에 멸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어명 Marāthā Wars
언제 1775-1782, 1803-1805, 1817-1818
어디서 인도
누가 마라타족
무엇을 영국 동인도회사와 전쟁
어떻게 3차례에 걸쳐, 결국 영국세력에 굴복
영국이 인도로 세력을 확장

마라타 전쟁은 총 세 시기에 걸쳐 전개 되는데 각 전쟁별 원인과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제1차 마라타 전쟁(1775-1782)

1772년 마드하브라오 페사와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인 나라얀라오 페사와가 왕위를 세습했다. 그러나 나라얀라오의 삼촌인 라그후나스라오가 나라얀라오를 암살하고 자신이 새로운 왕으로 취임했다. 같은 시기에 나라얀라오의 미망인인 강가바이가 나라얀라오의 아기를 출산하였는데, 마라타 왕국의 12명의 지방 지도자들이 이 아기가 왕실의 혈통을 잇는 유일한 세습인이라고 주장하여 결국 라그후나스라오가 왕위에서 폐위되었다. 그는 왕위를 물러나면서 봄베이 소재의 영국령 동인도 회사와 1777년 3월 7일 수랏(Surat)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라그후나스라오는 수랏과 바루흐 지역에서 걷히는 세금을 영국에 인도하고 살세트와 버세인 지역을 영국에 할양하며, 영국은 라그후나스라오에게 2천500명의 군사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브리티쉬 켈커타 의회는 협정이 무효라는 점을 주장하고 영국에게 협정의 무효성을 알렸으나 영국령 봄베이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1777년부터 양국의 본격적인 무력 충돌이 시작되었다. 마라타군 8만명과 영국군 3만5천명이 만난 와드가온 전투에서 영국은 1779년 1월 중순 패배를 인정하고 와드가온 조약을 맺어 1775년 이후 영국이 할양받은 영토를 다시 내어 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영국은 곧 이를 번복하고 같은 해 2월부터 마라타군과 전쟁을 벌여 결국 1781년 승리했다. 이듬해 5월 마라타 왕국의 서쪽 영토를 영국에 내어주는데 합의한 살바이 조약을 맺으면서 1차 전쟁은 막을 내렸다.

제2차 마라타 전쟁(1803-1805)

제2차 전쟁은 페사와 바지 라오 2세가 마라타 동맹국이 자신의 명령에 따라줄 것을 요구했고, 여기에 반기를 든 훌카스에게 패배하면서 발생했다. 전쟁에 패한 후 바지 라오 2세는 영국이 마라타 왕국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 대가로 영국은 1802년 마라타 왕국을 보호해주는 버세인 조약을 맺었다.

이 사건 이후 마라타 왕국은 동맹국가에게 위신이 크게 깎였는데 특히 그와리오와 나그뿌르, 베라르가 마라타 왕국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이 동맹국들은 영국군에 의해 패배했고 마라타 왕국을 패배시켰던 홀카르 족장도 영국에 패배하였다. 1805년 영국은 오리사주와 구자라트 서쪽지역 등을 마라타 왕국으로부터 할양 받았다.

제3차 마라타 전쟁(1817-1818) 

제3차 전쟁 결과 마라타 왕국을 포함한 인도 대부분이 영국령 동인도 회사에게 점령당했다. 전쟁의 시작은 영국 식민 총독이 마라타 왕국의 영토를 침략하면서 시작됐다. 마라타 동맹국들이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에 참가하였으나 모두 패하면서 마라타 왕국은 영국에 종속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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