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의 인도

근현대의 인도

15세기 말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 내항한 것을 비롯해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상인들이 인도에 건너와서 각지에 상관(商館)을 설치하여 면직물이나 향신료(香辛料) 등의 무역에 종사하였다. 그들은 인도의 모든 세력과 교섭하고, 때로는 전쟁을 하였으며 유럽 제국 간에도 무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싸웠다. 이 싸움은 유럽에서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성쇠에 대응하여 유럽에서 현저하게 발전해온 영국이 점차 다른 나라를 제압하고, 18세기 중엽에는 프랑스를 격파해서 패권을 장악하였다.

1765년 영국은 벵골의 영유권을 획득해서 인도식민지 지배를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인도 이동(以東)의 무역에 대하여 독점권을 주어 회사의 활동을 지원해왔다. 동인도회사가 벵골을 영유하게 되자 인도를 통치할 기관으로서 인도총독을 두었다.

그 무렵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은 카르나타카전쟁 ·마라타전쟁 등 인도의 모든 왕국을 상대로 한 수차에 걸친 전쟁을 통해 영토를 빼앗거나 복속시켜 북서부를 제외한 인도의 모든 지방에 걸쳐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이 동안에 예로부터의 징세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개정하고, 또 사법 ·경찰 등의 제도를 수립해서 식민지의 지배체제를 만들어냈다. 인도의 부(富)는 약탈되고 소수의 계급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였다.

19세기에 이르자 영국 본토에서 으로 양산된 면직물을 비롯한 공장생산품이 한층 다량으로 인도시장을 유린하여 인도는 영국의 상품시장이 되고 예로부터의 상품생산지는 큰 타격을 받았다. 1857년 영국 군대의 인도 (傭兵:세포이)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것이 북인도 일대에 퍼져 농민에서 구지배계급까지 광범한 사람들이 참가한 대반란(大反亂)으로 발전하여 영국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인도인측의 미약한 조직, 불명확한 지도원리 등으로 영국에 굴복하였다. 이 항쟁으로 동요된 영국 본국은 1858년 동인도회사에 의한 통치를 끝마치고 인도를 직접 통치하였다. 기구(機構)나 법률을 재정비하고 북서부의 영토를 굳혀서 제국주의시대의 막을 열었다. 인도인은 식민지지배 하에서 영국문화를 접하고 지주 ·상인 등 새로 생긴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 힌두교의 종교와 사회를 반성, 개혁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또 당시의 영국정치사상이 도입되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봄베이 등지에서 인도인은 스스로 근대적 방적공업을 일으키는 등 부르주아 계급이 발달하였다. 그들은 계급적 이익을 요구하기 위해 1885년 인도 국민회의파(國民會議派)를 창설하였다. 회의파는 당초에는 온건하였으나 당시 이미 인도 경제의 빈곤은 부가 영국으로 유출하는 것에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였고, 또 인도인의 정치향상을 위해서 힌두교도의 종교와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19세기 말에 티라크는 인도의 독립이 무엇보다도 선결문제라 하여, 민중을 정치운동에 참가시키는 길을 열었다.

인도총독 G.N.커즌에 의한 벵골 분할과 같은 제국주의적 식민지정책이 시행되자 회의파는 티라크 등의 의견을 채택해서 스와라지(자치 ·독립) ·스와데시(국산품사용) ·민족교육의 강령(綱領)을 내걸고 반항하였다. 그러면서도 티라크 등의 정치적 급진파와 고카레 등의 온건파가 독립을 위한 투쟁방법에 대해서 대립하였고, 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대립도 깊어져서 1906년에는 무슬림연맹이 발족하였다. 이슬람교도는 19세기 중엽부터 사회나 종교의 개혁운동을 추진하여왔으나 영국정부의 분열정책에도 영향을 받아 그들의 독자적인 요구를 주장하게 되어 이후 힌두교도와의 대립이 격심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암리차르 학살사건을 거쳐 간디의 지도하에 제1차의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시작되어 새로운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1920년대에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이 활발하여졌다. 또 면공업 ·철강업이 한층 발전하였다. 대공황(大恐慌) 후 제2차의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에 의해 또다시 독립에의 부르짖음이 높아져서 영국측의 탄압과 양보가 되풀이되는 중에 인도민중의 힘이 결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회의파는 전쟁 비협력을 선언하고 이어서 영국의 철수를 요구하는 투쟁을 해서 큰 탄압을 받았다. 이 동안 전(全) 인도무슬림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결의하고 전후에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각지에서 일어나 결국 47년 8월 15일 인도연방과 파키스탄공화국으로 분리해서 각각 독립하였다.

[인도의 독립운동사]

1857

세포이의 항쟁(~59)

1858

동인도회사 해산 - 영국 인도를 직접 통치함

1885

인도국민회의파 창설

1905

뱅골 분할반대운동(~07)

1906

인도 무슬림연맹 결성

1919

암리차르 학살사건, 제1차 비폭력적인 저항운동(~22)

1920

전인도 노동조합회의 결성

1930

제2차 비폭력적 저항운동(~34)

1935

신인도 통치법 제정

1936

전인도 농민조합 결성

1937

주의회선거-국민회의파 압승

1942

국민회의파, 영국세력의 인도철수를 결의-지도자 체포됨

1946

인도 수병(水兵)의 반란을 비롯하여 격심한 반영운동 퍼짐

1947

인도공화국 독립됨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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