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타 왕국

마라타 왕국

[ Mahratha ]

요약 1674년 마라타족을 중심으로 시바지가 인도 중앙부 데칸고원에 창건한 왕국(1674∼1818).

17세기 당시 데칸의 여러 지방 왕권은 이슬람교도 지배층이 장악하고 있었고, 그 밑에는 각지에 힌두족의 호족 ·토호가 있었다. 그들은 그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영주층이었고 마라타의 호족들은 이슬람 제왕조와 결탁하면서 서로 항쟁을 되풀이하여 전국시대로 들어섰다.

시바지는 원래 아딜 샤 왕국을 섬기던 마라타의 무장 샤하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는데, 성장한 후 푸나 부근의 땅을 본거지로 주변의 마라타 호족과 토호를 결집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였다. 남으로는 아딜 샤 왕국에 침입하고, 북으로는 무굴제국의 군대와 싸우면서 영토를 확대하여 1674년 마라타왕으로 즉위하고 힌두족 왕국을 부흥시켰다. 1680년 시바지가 죽자 마라타 왕국은 곤경에 빠져 그의 아들 삼바지는 1689년 무굴군(軍)에게 잡혀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삼바지의 아들 샤후도 붙잡혀서 무굴제국의 황실에서 양육되었다. 1707년 데칸 정복에 최후의 야망을 걸었던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가 죽자 제위(帝位)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 기회를 틈타 잡혀 있던 샤후는 새로 즉위한 무굴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귀국하여 이듬해 발라지비슈바나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샤후왕은 무굴의 황실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데칸의 실정에 어두웠으므로 마라타 왕국의 실권은 공신이었던 재상 발라지비슈바나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후 재상직은 그의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이후 이들 재상의 지휘하에 마라타 세력은 강대해졌는데, 중부 인도 ·라자스탄 ·구자라트 등을 정복하고, 이어 멀리 북인도 ·벵골 지방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 이미 쇠퇴하고 있던 무굴제국은 실질적으로 마라타의 보호 ·관리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확대 일로를 치닫던 마라타의 세력도, 1761년 아프간 세력과의 싸움에 패하여 점차 감퇴하였다. 즉, 바라지 2세가 힌두제국의 실현을 목적으로 각지의 마라타 제후를 규합하여 마라타동맹을 결성하고 북인도까지 진출하였는데, 파니파트전투에서 아프간군(軍)에게 패배한 후로는 동맹세력이 약화되었고, 제후도 재상의 통솔에서 이탈하여 서로 세력다툼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국의 동인도회사의 군대에게 3회에 걸쳐 패전을 거듭한 결과, 재상령(宰相領)은 영국령에 병합되었으며, 제후국의 대부분도 영국에게 종속되어 번왕국(藩王國)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