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다자오

리다자오

[ 李大釗(이대소) ]

요약 중국의 사상가이자 중국공산당의 공동 설립자. 중국공산당 창당의 사상적 준비에 크게 기여하였다. 베이징대학 내에 마르크스주의연구회를 창설, 5 ·4운동 후 신문화운동 지도자가 되었고 중국공산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국민당에 입당, 그 개편과 국공합작을 추진하였다.
베이징대학교 리다자오 반신상

베이징대학교 리다자오 반신상

출생-사망 1889.10.6 ~ 1927.4.28
서우창[守常]. 필명 밍밍[明明]
국적 중국
활동분야 정치사상, 정치
출생지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주요저서 《리다자오선집[李大釗選集]》

자 서우창[守常]. 필명 밍밍[明明]. 허베이성[河北省] 출생. 텐진[天津]의 북양학당(北洋學堂)과 일본의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하였다. 귀국 후 《신종보(晨鐘報)》의 편집자로 활동하는 등, 신문화운동에 참가하여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반동성(反動性)을 비판하였다. 1918년 베이징[北京]대학 문과대학 교수 겸 도서관 주임이 되어 ‘사회운동사’를 강의하는 한편, 《신청년》 《매주(每週)평론》 등을 통하여 러시아혁명을 높이 평가한 《볼셰비즘의 승리》에 이어, 중국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인 《나의 마르크스주의관》을 발표하는 등, 중국공산당 창당의 사상적 준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0년 베이징대학 내에 마르크스주의연구회를 창설, 이듬해의 5 ·4운동 후 신문화운동 지도자가 되었고,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또 1922년에는 국민당에 입당, 그 개편과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추진하였다. 1924년 모스크바에서의 제5회 코민테른 대회에 참석 후, 1925년 쑨원[孫文]이 죽자 국민당 및 공산당 지도자로 활약, 1925년 수도(首都)혁명, 1926년 3·18사건 등 국민운동을 지도하다가, 1927년 4월 장쭤린[張作霖]의 러시아 대사관 수색사건 때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저서에 《리다자오선집[李大釗選集]》과 많은 논문이 있다.

역참조항목

리다자오구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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