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요약 프랑스의 박물학자·진화론자. 생명이 맨 처음 무기물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유기물로 변화되어 형성된다고 하는 자연발생설을 역설하면서 이것이 필연적으로 여러 기관을 발달시키고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하였다. 또, 진화에서 환경의 영향을 중시하고 습성의 영향에 의한 용불용설을 제창하였다.
원어명 Chevalier de Lamarck Jean-Baptiste-Pierre Antoine de Monet
출생-사망 1744.8.1 ~ 1829.12.18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박물학
출생지 북프랑스의 바장탱
주요저서 《무척추동물의 체계》(1801) 《동물철학》(1809)

북프랑스의 바장탱의 귀족가문에서 출생하여 소년시절을 신학교에서 보냈다. 17∼25세에 군대에 있다가 파리에 가서 은행원이 되었으나, 식물원 견학에서 자극을 받아 식물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는 의학과 식물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식물지》(1778)를 출판하여 유명해졌다. 프랑스혁명과 함께 개편된 파리식물원의 무척추동물학 교수로 임명되어(1793), 동물학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다. 또, 그는 화석과 지질학 등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서서히 진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저서 《무척추동물의 체계》(1801)에서 최초의 진화사상을 보이기 시작하여, 그의 진화론이 명확하게 나타난 것은 《동물철학》(1809) 및 《무척추동물지》(제1권, 1815)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생명이 맨 처음 무기물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유기물로 변화되어 형성된다고 하는 자연발생설을 역설하면서 이것이 필연적으로 여러 기관을 발달시키고 진화시켜 왔다고 주장하였다. 또, 진화에서 환경의 영향을 중시하고 습성의 영향에 의한 용불용설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획득형질 유전론으로서, 라마르키즘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진화론은 당시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퀴비에의 천변지이설로부터 비판을 받아 인정되지 않았으며, 만년에는 가난과 실명으로 고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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