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룡굴

동룡굴

[ 蝀龍窟 ]

요약 평북 영변군(지금의 구장군) 용산면(龍山面)에 있는 석회동굴.

주동(主洞)의 길이는 1,463m. 평균 너비 40m. 평균 높이 20m. 평남 개천군 북면(北面)과의 도계(道界) 가까이에 위치하는 운학참(雲鶴站) 마을에 있다. 동룡굴이 있는 용산면과 신현면(薪峴面) 일대는 평남에서 계속되는 캄브리아기의 석회암지대로서 각처에 카르스트 지형을 나타내고 있는데 동룡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때 나라가 망함을 서러워하여 불상을 안고 속세를 하직한 운림선사(雲林禪師)가 낭림산맥으로 들어갈 때, 홀연히 서운(瑞雲)이 걷히고 동룡(蝀龍)이 승천한 자리에 동구(洞口)가 나타나 들어가 보니 몸을 감출 수 있었으므로 불상을 모시고 일생을 마쳤기에 동룡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부근 사찰의 많은 법승과 주민들이 이 굴에서 왜군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룡굴은 미국 켄터키주(州)에 있는 매머드 석회암동굴에 비길 만한 규모와 절경을 이루는 동굴이다. 종유석(鍾乳石) ·석순(石筍) ·석주(石柱) 등의 발달이 두드러지며 석회화(石灰華)의 침전물에 의하여 다수의 계단논 모양의 용식지형(溶蝕地形)의 소지(小池)가 발달되어 있다. 동구에서 내부로 들어가면 운림선사가 몸을 의지하였다는 세심동(洗心洞)을 비롯하여 벼랑 위에 있는 박쥐굴[蝙蝠洞], 넓이 1,000여 평에 이르고 미륵탑 ·관음탑 등 경승지가 있는 다불동(多佛洞), 그리고 길이 110m, 너비 5∼20m의 용식지인 용연동(龍淵洞)과, 석주가 많은 부처를 연상케 하는 칠불동, 넓이 1,400평으로 동룡굴에서 가장 넓은 금강동(金剛洞)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특히 금강동은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벽면에는 석회화가 폭포수처럼 응결되어 있고, 내부에는 극락문 ·지옥문 ·해탈문 ·낙타암 등의 명소와 금강산의 만물상(萬物相)을 연상케 하는 만물상이 있어, 지하금강이라는 별칭 그대로 신비로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