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

남반

[ 南班 ]

요약 고려시대 궁궐에서 숙직하고 국왕을 시종하며 왕명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내료(內僚).

중국에서 당(唐)나라 이후 문·무반이 동서로 반열하는 데 대하여 근시(近侍)는 남쪽으로 반열한 데서 비롯하였다. 성종 때 관제를 정비하면서 처음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문종 때 액정국 밑에 내전숭반(內殿崇班:정7품) 4명, 동서두공봉관(東西頭供奉官:종7품) 각 4명, 좌우시금(左右侍禁:정8품) 4명, 좌우반전직(左右班殿直:종8품) 각 4명, 전전승지(殿前承旨:정9품) 8명, 초입사직(初入仕職)으로 전전부승지·상승내승지(尙乘內承旨)·상승부내승지 등을 두었고, 정7품을 최고 관직으로 삼아 그 이상 진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988년(목종 1)의 개정전시과 제9과에 선휘사(宣徽使), 제13과에 내전숭반(內殿崇班)이 있고, 1033년(덕종 2)의 피마식(避馬式) 규정에 남반선휘사(南班宣徽使:4품)·남반인진사(南班引進使:5품)·남반각문통사사인(南班閣門通事舍人:6품) 등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4품이 상한이었다. 이것이 문종 때 근시세력을 억제하면서 선휘사를 폐지하고, 인진사·통사사인은 각문(閣門)에 소속시키면서 변화된 것이다.

남반은 태조의 후예로 한미(寒微)한 자, 가문에 흠이 있는 양반 자제, 잡로(雜路)의 외손(外孫) 등이 관로에 진출하는 곳으로, 문무 양반과 달리 중간계층에 속하였다. 특히 7품에 제한하여 국가에 공로가 있을 때도 포상했을 뿐 품계를 올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왕 측근으로 활동한 까닭에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원종 때 장군·낭장에 임명되는 경우가 있다가 충렬왕 이후에는 재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참조항목

동반, 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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