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남

김지남

[ 金止男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호관을 면박하였고,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이이첨 일당의 죄상을 폭로하였다. 승지를 거쳐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출생-사망 1559 ~ 1631
본관 광산
자정
용계
주요저서 《용계유고》

본관 광산. 자 자정(子定). 호 용계(龍溪).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정자(正字) ·예조좌랑을 지냈다. 집의(執義)로 있던 1613년(광해군 5) 박응서(朴應犀)의 무고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호관(鄭好寬)을 면박하였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는 이이첨(李爾瞻) 일당의 죄상을 폭로하였다.

승지를 거쳐 예조 ·병조 ·형조의 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행주판관(幸州判官), 경기 ·평안 ·강원도의 도사(都事)와 남양(南陽) ·순천 ·상주(尙州) ·청풍의 수령을 지냈으며, 1621년에는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 때 임명된 조신(朝臣)들이 외직에서 모두 파면되었으나, 그만은 유임되었다. 문집에 《용계유고(龍溪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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