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 金怡 ]
- 요약
고려 말기의 문신 ·춘양 김씨(春陽金氏)의 시조. 1298년(충렬왕 24) 원나라에 간 충선왕을 시종하였으며, 왕 부자를 이간시키려는 간신배들을 제거하는 데 공이 컸다. 충선왕 복위 후, 심양왕 고를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건을 중지시켰다.
출생-사망 | 1265 ~ 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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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열심 ·은지 |
시호 | 광정 |
활동분야 | 행정 |
출생지 | 복주(안동)의 춘양현 |
자 열심(悅心) ·은지(隱之). 시호 광정(匡定). 초명 지정(之琔). 개명 정미(廷美). 복주(福州:안동)의 춘양현 출생. 이(怡)는 충선왕(忠宣王)이 내린 이름이다. 1292년(충렬왕 18) 내시(內侍)로 임용되고, 1298년(충렬왕 24) 전왕(前王)으로서 원(元)나라에 간 충선왕을 시종하였으며, 왕 부자를 이간시키려는 간신배들을 제거하는 데 공이 컸다. 1308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개성부소윤(開城府少尹)으로 풍저광흥창 의영고 제용사사(豊儲廣興倉義盈庫濟用司事)를 겸하여 전곡(錢穀)의 출납을 주관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장배(杖配)된 김심(金深) ·이사온(李思溫)의 일당으로 몰려 기장감무(機張監務)로 좌천되었으며 가산을 적몰(籍沒)당하기도 하였다. 그 뒤 유청신(柳淸臣) ·오잠(吳潛) 등이 왕위를 심양왕(瀋陽王) 고(暠)에게 전하게 하고 행성(行省)을 설치하여 국호의 폐기를 원나라에 청함으로써 원제(元帝)가 이의 실행에 착수하려 하자, 최성지(崔誠之)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도당(都堂)에 상서(上書)하여 이를 중지토록 하였다. 1327년(충숙왕 14) 첨의중찬(僉議中贊)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