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지
[ 崔誠之 ]
- 요약
고려시대의 문신.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오랫동안 귀국하지 않자 권한공 등과 뇌물을 받는 등 관리선용권을 남용하다가 투옥되었다. 일부 고려인들이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으로 하자고 선동하자 원나라에 그 득실을 진정하여 논의를 중지케 했다. 그가 원나라에서 배워온 역수(易數)의 학은 그 뒤 고려 학계에 큰 공헌을 했다.
출생-사망 | 1265 ~ 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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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全州) |
자 | 순부(純夫) |
호 | 송파(松坡) |
시호 | 문간(文簡) |
본명 | 부(阜) ·당 ·수(琇) ·실(實) ·성지 |
활동분야 | 정치 |
전주(全州). 순부(純夫). 송파(松坡). 문간(文簡). 이름 부(阜) ·당(璫) ·수(琇) ·실(實) ·성지. 때 문과에 급제, 사한(史翰) ·감찰사지사(監察司知事) ·첨의평리(僉議評理) 등을 거쳐 찬성사(贊成事)로서 광양군(光陽君)에 봉해졌다. 이 원나라에서 오랫동안 귀국하지 않자, 권한공(權漢功) 등과 뇌물을 받는 등 관리선용권(官吏選用權)을 남용하다가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320년( 7) 충선왕이 토번(吐蕃:西藏)에 유배될 때는 몸을 피하여 나타나지 않다가, 일부 고려인들이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省)으로 하자고 선동할 때 원나라에 그 득실을 진정하여 논의를 중지케 했다. 그가 원나라에서 배워온 역수(易數)의 학(學)은 그 뒤 고려 학계에 큰 공헌을 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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