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김용원

[ 金庸源 ]

요약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3·1운동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및 외교후원회 자금 조달 등을 했다.
출생-사망 1892.2.16 ~ 1934.6.13
본관 경주(慶州)
중옥(仲玉)
강산(剛山)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충남 대덕(大德)
주요수상 건국포장(1977), 건국훈장 애국장(1990)

본관 경주(慶州). 자 중옥(仲玉). 호 강산(剛山). 충청남도 대덕(大德)에서 출생하였다. 1914년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졸업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3·1운동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원이 되었다. 독립운동 및 외교후원회 자금의 조달을 위하여 1920년 국내에 들어와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剛)과 접선, 대동단(大同團)을 조직하고 그를 상하이로 망명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 홀로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21년 5월에는 김구(金九)의 후임으로 임정경무국장에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의정원 청원징계(請願懲戒) 상임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동년 11월에는 태평양회의에 관한 임시정부의 후원과 지도를 목적으로 외교위원회를 조직하고 박찬익(朴贊翊)의 후임으로 간사가 되어 태평양회의 축하회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홍진, 신익희, 이진산(李震山) 등 25명과 함께 연서한 청원서를 재미 각국 대회자에게 송부하여 한국의 독립을 역설하였다.

1924년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독립공채(獨立公債)를 가지고 귀국, 활약하다가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구서울구치소)에 복역중 이듬해 형집행이 정지되어 출옥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하였다가 또다시 자금 모금을 위하여 입국하여 활약중 1926년 충청남도 논산(論山)에서 체포하려는 일본경찰을 타살하고 피신하여 국내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안동(安東)에서 잡혀 무기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중 병으로 보석되었으나, 이튿날 병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역참조항목

원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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