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친왕

의친왕

[ 義親王 ]

요약 조선 고종의 다섯째 아들. 어머니는 귀인 장씨. 1919년 대동단의 최익환 등과 협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을 기도, 만주 안둥에서 발각, 송환되었다. 그 뒤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고 끝까지 배일정신을 지켰다.
의친왕릉

의친왕릉

출생-사망 1877 ~ 1955
본관 전주
만오
본명 이강
국적 조선, 대한제국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서울

호 만오(晩悟). 초명 평길(平吉). 이름 이강(李堈). 고종의 다섯째 아들. 어머니는 귀인(貴人) 장씨(張氏). 1891년(고종 28) 의화군(義和君)에 봉해지고, 1894년 보빙대사(報聘大使)로 도일하여 일제의 청일전쟁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에 참석하였다. 이듬해 6개국 특파대사(特派大使)로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차례로 방문하고 1896년 귀국했다.1899년(광무 3) 미국에 유학,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교와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에서 공부했다. 미국에서 유학생 시절에 의친왕에 봉해졌으며 귀국하여 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1919년 일진회에서 활동하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전협(全協), 대동단(大同團)의 최익환(崔益煥) 등과 협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여 상하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당시 조선 황족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평가되었다.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기차로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만주 안둥[安東: 현 랴오닝성 단둥]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의친왕이 자택에서 사라지자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전개한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다시 국내로 송환되었다. 그의 망명실패로 국내 항일 조직이었던 대동단 조직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27년 그 뒤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고 끝까지 배일(排日)정신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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