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김용

[ 金鏞 ]

요약 고려 말기의 신하이며 자신의 권세를 위해 온갖 패륜을 저질렀다. 공민왕을 시해하려다 발각되어 사지가 찢기는 극형을 받고 처형되었다.
출생-사망 ? ~ 1363
본관 안성
별칭 안성군(安城君)
주요수상 수충분의공신(輸忠奮義功臣) 1등공신

본관 안성이다. 공민왕이 세자로 나라에 갔을 때 시종한 공으로, 대호군(大護軍)에 올랐다. 공민왕이 돌아와 즉위하자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으며, 1352년(공민왕 1) 밀직부사로 수충분의공신(輸忠奮義功臣)의 호를 받았다. 공민왕의 측근이었던 조일신(趙日新)이 행궁(行宮) 습격하여 공민왕을 시해하려는 사건이 발생하던날 김용은 내전에 있었으나 대응하지 않고 숨어있기만 하였다. 이일로 곤장을 맞고 섬으로 유배되었다. 1354년 원나라에서 한족들이 반란으로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할 때, 고려에 원군을 요청해와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져 참여하였다. 이듬해 돌아온 뒤 첨의사지도사(知都事) ·첨의평리(評理) ·중서문하시랑평장사(中書門下侍郞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다. 1355년 원나라에서 돌아와 김보(金普)를 실각시키려다 치졸한 계략이 발각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356년 유배에서 풀려나고 1358년에 중서문하시랑평장사(中書文下侍郞平章事)가 되었다. 이는 공민왕이 측근세력을 두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 때문에 김용이 또다시 기용된 것이었다.

1361년 정세운(鄭世雲) ·안우(安祐) 등이 홍건적을 격퇴하여 공을 세우자, 이를 시기하여 1362년 공민왕의 가짜 편지를 써서 안우와 이방실로 하여금 정세운 장군을 죽이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주장(主將)을 죽였다는 죄를 씌워 안우마저 죽였고 이어 이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김림, 이방실, 김득배를 모두 죽였다. 김용은 자신의 죄상이 폭로됨이 두려워, 원나라에 있는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옹립하여 자신의 권세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1363년 때마침 흥왕사(興王寺)의 행궁에 있는 공민왕을 부하를 시켜 시해하게 하였으나, 환관 안도치(安都赤)를 왕으로 오인하여 살해하고 우정승 홍언박(洪彦博), 김장수(金長壽) 등을 죽였다. 하지만 공민왕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입장을 바꾸어 개경에서 여러 대신을 시켜 흥왕사의 변(變)에 참여한 적도(賊徒)를 토벌하게 하고 잡혀오는 적도를 심문도 안하고 즉결 살해함으로써 음모의 누설을 방지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1등공신에 책록되었으나, 잡혀온 반란군을 심문도 하지 않고 죽여버린 사실 때문에 의심을 받게 되었다. 모든 사실이 발각되었지만 김용에 대한 공민왕의 신임이 두터웠기에 밀성(密城: 밀양)으로 유배되는데 그쳤다. 하지만 모든 계략의 김용이 꾸민 사실이 발각되자 계림부(鷄林府: 경주)에 투옥된 뒤 사지가 찢기는 극형을 받고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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