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혁

김시혁

[ 金始爀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숙종 ·경종 ·영조 대에 관직을 지냈다. 1741년 강화부유수로 나갔는데, 청나라에서 본 번벽법(燔襞法)으로 강화도 외성을 개축하였고, 그 공으로 1744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출생-사망 1676 ~ 1750
본관 강릉
회이
매곡
시호 효헌
활동분야 행정

본관 강릉. 자 회이(晦而). 호 매곡(梅谷). 시호 효헌(孝憲). 1708년(숙종 3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持平)·정언(正言)을 지냈다. 영광군수 때 삼남지방 양전(量田)의 전부(田賦)를 배로 올려 나라에 이익을 주었다. 1722년(경종 2) 수찬·교리를 거쳐, 헌납·사간·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그뒤 동지사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4년 수원부사로 나갔다가 영조 즉위 후 물러났으나, 1727년(영조 3) 정미환국 이후 황해도관찰사로 기용되었다. 1729년 호조참의·대사간·춘천부사를 지냈고 1734년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호조참판 겸 부총관(戶曹參判兼副摠管) 및 비국제조(備局提調)로 승진하여 명사변무(明史辨誣)를 위해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1741년 강화부유수로 부임하여 청나라에서 본 번벽법(燔甓法)으로 강화도 외성(外城)을 개축는데 공을 세웠다. 1744년에는 한성부판윤 겸 지의금부사(漢城府判尹兼知義禁府事)와 평시서제조(平市署提調)를 거친 뒤 대사헌이 되었다. 이듬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공조판서·좌참찬(左參贊)을 거쳐 판돈령부사에 이르렀다. 양역(良役)의 변통에 능란하였다.

참조항목

매곡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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