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찬

김시찬

[ 金時粲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영조 대에 대교로 있을 때, 조태구 등 소론 일파의 처벌을 청했다가, 탕평책에 반대한다 하여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이후에 복관되고, 1759년 부제학에 임명되었는데, 이를 사양하는 글속에 불경한 구절이 있다 하여 다시 유배되었다.
출생-사망 1700 ~ 1767
본관 안동
치명
초천
별칭 시호 충정
출생지 홍주
주요저서 《초천집》

본관 안동. 자 치명(穉明). 호 초천(苕川). 시호 충정(忠正). 홍주(洪州) 출생. 1721년(경종 1) 진사가 되고,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으로 등용되었다. 검열(檢閱)을 거쳐 대교(待敎)로 있을 때, 조태구(趙泰耉) ·유봉휘(柳鳳輝) ·이광좌(李光佐) 등 소론(少論) 일파의 처벌을 청했다가, 탕평책에 반대한다 하여 흑산도(黑山島)에 유배되었다.

1740년 수찬(修撰)으로 복관(復官), 1755년 대사간이 되었다. 1759년 부제학에 임명되자 이를 사양하고자 글을 올렸는데, 글 속에 불경(不敬)한 구절이 있다 하여 다시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1764년에 풀려나왔으며,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다. 문집에 《초천집》이 있다.

참조항목

이광좌, 조태구

역참조항목

북애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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