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랑

김소랑

[ 金小浪 ]

요약 1910년대 신파극(新派劇)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극단 취성좌(聚星座)를 조직하여 좌장(座長)을 맡았고 주로 외국 희곡을 공연하며 신극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출생-사망 ? ~ ?
본명
활동분야 연극

본명 현(顯). 1911년 임성구(林聖九) ·김도산(金陶山) 등과 더불어 혁신단(革新團)에 참가하였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신극운동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다. 1918년 수십 명의 배우를 규합하여 극단 취성좌(聚星座)를 조직하여 좌장(座長)이 되었고, 부좌장격이던 아내 마호정(馬豪政)을 무대에 세워 한국에서 2번째 여배우가 되게 하였다. 강홍식(姜弘植) ·이애리수(李愛利秀) ·신은봉(申銀鳳) ·이경설(李景雪) ·나품심(羅品心) 등과 함께 주로 외국 희곡을 공연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신극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임성구 ·윤백남(尹白南) ·이기세(李基世) ·김도산 등과 더불어 1910년대 신파극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다. 취성좌의 인기 레퍼토리로는 《추월색(秋月色)》《사람의 원수》《선처(善妻)와 양녀(良女)》 등이 있다.

참조항목

취성좌, 혁신단

역참조항목

조선연극사, 지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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