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두

김선두

[ 金善斗 ]

요약 장로교 목사로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 지역 교회들이 뭉쳐 봉기함으로써 주도적 역할을 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후에 만주로 망명, 만주신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출생-사망 1876 ~ 1949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평남 대동

장로교 목사. 평남 대동(大同) 출생.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숭실대학을 마친 후 1913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5년만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제7대 총회장에 피선되는 기록적인 영예를 누렸다. 평양 서문밖[西門外]교회 등의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숭실중학·숭실대학에서 성경과목 교수를 하였는데,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 지역 교회들이 뭉쳐, 봉기함으로써 주도적 역할을 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24년부터는 평양 장로회신학교 성경 강사를 담당하였고, 1926년에는 선천(宣川)에 있는 신성(新成)중학교로 옮겨, 당시 교장이던 C.호프만(한국명 咸嘉倫) 선교사를 도와 성경을 가르치며 대리시무를 하였다.

1938년 교단의 제27차 총회를 앞두고 신사참배(神社參拜) 문제로 일제의 종교탄압이 심해지자,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궁내부대신(宮內部大臣)·국회의원 등 조야 인사들을 만나 한국교회의 입장을 호소하여 협조 약속을 받았다. 후에 만주로 망명, 만주신학원(후에 봉천신학교로 됨)에서 박형룡(朴亨龍)·박윤선(朴允善) 등과 함께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8·15광복 후 귀국, 월남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참조항목

장로교

역참조항목

박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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