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일
[ 金克一 ]
- 요약
조선 전기의 효자. 조부모, 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아들과 손자들의 교육을 맡아 손자 준손·기손·일손이 모두 당대의 문장으로 과거에 올라 '김씨삼주'라는 호칭을 듣게 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세종 때 효자정려, 성종 때 효자문비가 건립되었다.
출생-사망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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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김해 |
자 | 용협 |
호 | 모암 |
별칭 | 사시·효절 |
활동분야 | 학문 |
본관 김해. 자 용협(用協). 호 모암(慕庵). 사시(私諡) 효절(孝節). 학자 일손(馹孫)의 조부. 일찍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조부모와 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였는데, 그 봉양을 위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들 맹(孟)은 물론 손자들의 교육까지 직접 맡아 손자 준손(駿孫)·기손(驥孫)·일손이 모두 당대의 문장으로 과거에 올라 '김씨삼주(金氏三珠)'라는 호칭을 듣게 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세종 때 청도군수 이기(李掎)의 보고에 따라 효자정려(孝子旌閭)가 세워지고, 1482년(성종 13)에는 김종직(金宗直)이 찬한 효자문비가 건립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일손을 제향한 청도의 자계서원(紫溪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