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기호

[ 記號 ]

요약 인간의 지식·의지·감정을 어떤 물리현상을 통하여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형식.

인간은 자신의 의지·감정, 사물에 대한 지식 등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식·의지·감정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체 내의 것이므로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식의 내용, 의지의 핵심, 감정의 움직임 등을 표시하는 어떤 물리현상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분노의 경우, 분노하는 '표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표정은 안면 근육의 긴장상태, 즉 하나의 생리현상이고, 엄밀하게 말한다면 하나의 물리현상일 뿐이다. 그 표정이 분노를 의미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그리고 그것이 그런 뜻으로 수용될 때, 표정은 분노라고 하는 내적 과정의 '기호'라고 생각할 수 있다.

표정이라는 기호에 의하여 분노가 전달되는 과정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 생각하여 표정을 하나의 정보(情報)라고 규정하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란 기호의 운동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정보는 기호의 집합체이고, 기호는 정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가 된다. 인간은 저녁놀이라는 물리현상 그 자체 속에 '내일은 맑음'이라는 의미를 발견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동에는 '사물(事物)'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의 의미를 표상(表象)하는, '사물'의 대용품인, 혹은 '사물'의 모사(模寫)인 기호가 항상 매체 구실을 한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동이라는 것은 상당히 다원적(多元的)·다종(多種)·다양(多樣)한 형태를 취하므로, 기호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언어와 넓은 의미의 영상(映像)이다. 커뮤니케이션 행동은 그 목적과 구체적인 형태에 의거, 이러한 각종 기호를 조합하여 성립되었다. 기호를 상기(上記)한 바와 같이 정의하고, 그 현실적 형태로서, 예를 들어 언어·영상 등을 생각해 볼 때 그것들이 인간의, 넓은 의미의 정신활동(사람에 따라서는 정신활동을 내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생각한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호는 대상물='사물'의 모사인 동시에, 인간의 내적 과정과도 결합된다. 즉 기호는 인간정신의 내부와, 어디까지나 외적(外的)인 것을 연결하는 혹은 매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기호에 대한 흥미는 적어도 19세기까지의 정통적인 서양사상 속에서는 생겨나기 어려웠다.

기호를 과학적인 인식의 대상으로서 의식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 기구가 거대화하여, 인간의 사회적 인식이 이 기구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대기호론(現代記號論)이라는 하나의 학문 영역이 생겼다. 그러나 기호를 하나의 인식 대상으로 삼아,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한 사상적 유산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을 총칭하여 고전적 기호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