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관

구치관

[ 具致寬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내고, 진서대장군으로 여진족을 토벌했다. 후에 좌리공신일등을 받았다. 산업을 장려, 정직·청렴한 성품으로 청백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출생-사망 1406 ~ 1470
본관 능성
이율·경률.
시호 충렬
주요수상 추충좌익공신·좌리공신일등

본관 능성(綾城). 자 이율(而栗) ·경률(景栗). 시호 충렬(忠烈).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으나 성격이 정직하고 아첨하기를 싫어하여 10년이 지나도록 항상 낮은 벼슬에 있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고 재능을 인정받아 좌승지가 되었고,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에 책록되었다. 평안도절제사 ·이조참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466년(세조 12) 영의정이 되었다. 이 때 건주(建州)의 야인(野人), 즉 여진족이 변경을 자주 침범해 오자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 되어 토벌하였다. 예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으로서 호조판서를 겸임하고, 성종 때 다시 이조판서를 겸임, 1470년 65세로 죽자 좌리공신일등(佐理功臣一等)을 내렸다. 관직에 있을 때 산업을 장려하였고, 정직 ·청렴한 성품으로 청탁을 배격한 청백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역참조항목

유포석보, 구연태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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