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문학

구비문학

[ oral literature , 口碑文學 ]

요약 말로 된 문학을 의미하며, 기록문학과 대비되는 말.

구전문학(口傳文學)이라고도 한다. 구비와 구전은 대체로 같은 뜻으로서 구전은 '말로 전함'을 뜻하나 구비는 '말로 된 비석', 즉 비석에 새긴 것처럼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말이라는 뜻이다. 구비문학을 유동문학(流動文學)·표박문학(漂泊文學)·적층문학(積層文學)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용어들은 계속 변하며, 그 변화가 누적되어 개별적인 작품이 존재하게 된다는 한 가지 특징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구비문학을 대신할 수 있으나, 포괄적 의미로 쓰이기에는 부족하다.

구비문학을 민속학적 관점에서 다룬다면 민속문학이라는 용어가 타당하나 문학 연구의 관점에서 다룬다면 민속문학이란 용어는 부당하다. 구비문학은 ① 말로 된 문학, ② 구연되는 문학, ③ 공동작의 문학, ④ 단순·보편의 문학, ⑤ 민중적·민족적 문학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예술이란 점에서 문학은 음악이나 미술과 같으나 언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구별된다. 언어는 미술의 수단인 형태와 달리 시간적인 것이고, 음악의 수단인 음(音)과는 달리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언어예술이며, 시간적인 의미예술이다. 구비문학이나 기록문학이나 언어예술, 곧 시간적인 의미예술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구비문학을 굳이 '말로 된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존재하고 말로 전달되고, 말로 전승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구비문학은 말로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적이고 일회적(一回的)이며, 그것이 거듭 말해지면 이미 다른 작품이 된다. 말로 전달되므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대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전달이 가능하며 대량생산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말로 전승된다는 것은 말로 전해 들은 내용이 기억되어 다시 말로 재연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비문학 안에서는 그대로의 보존은 있을 수 없고 전승이 가능할 뿐이며, 이 전승은 반드시 변화를 내포한 보존이다.

구비문학을 말로 나타내려면 일정한 격식이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은 억양을 위시한 여러 가지 음성적 변화 및 표정과 몸짓을 사용하며, 그러기 위하여 구체적 상황이 요구된다. 어떤 상황 속에서 음성적 변화·표정·몸짓 등으로 문학작품을 말로 나타내는 것을 구연(口演:oral presentation)이라고 한다면, 구비문학은 반드시 구연되는 문학이다. 구비문학의 구연에서는 음성적 변화·표정·몸짓 등으로 일정한 구연방식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문학적 표현의 목적에 맞도록 조직되어 있다. 즉, 구연방식이나 구연상황이 구비문학의 종류나 장르에 따라 달라져, 노래인 구연방식도 있고, 노래가 아닌 구연방식도 있으며, 특정한 구연상황을 필요로 하는 장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장르도 있다.

또한 같은 장르나 같은 유형(類型:type)의 구비문학이라 하더라도 구연자(口演者)에 따라, 또는 구연의 기회에 따라 구연방식이나 구연상황이 달라진다. 구비문학에서 구연은 단지 있는 것만의 전달이 아니고 창작이기도 하다. 즉, 구연자는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이나 의식에 따라 보태고 고치는 작업을 하지만, 이러한 구연자의 창작은 공동적인 의식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따라서 서로 다른 구연자에 의해 이루어진 각편(各篇:version)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개인에 의해 구연된 각편은 개인작이지만 그것은 공동의 관심을 반영하며 전승되는 유형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공통적 의식을 내포한 것이다. 또한 구연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바를 재현하기 때문에 구비문학은 더욱 공동작의 성격을 지닌다. 구비문학은 형식이나 내용이 단순하다. 설화와 소설, 가면극과 현대극, 민요와 현대시 등을 비교해 보면 구비문학은 문체·구성·인물·주제가 단순함을 알 수 있다. 구비문학은 말로 된 문학이므로, 단순하지 않고서는 기억되고 창작되기도 어렵고, 듣고 창작되기도 어렵다.

또한 구비문학은 공동의 관심을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크다. 많은 구연·창작자들과 청자들의 공통된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보편성이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구비문학은 민중의 문학이다. 양반으로 이루어진 소수의 지배층, 또는 지식층을 제외하고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대다수의 민중은 생활을 통해서 구비문학을 창조하고 즐겨왔다. 노동을 하면서 노동요(勞動謠)를 부르고, 세시풍속(歲時風俗)의 하나로서 가면극을 공연하며, 생활을 흥미롭고 윤택하게 하고자 여러 가지 민요도 부르고 설화도 이야기해 왔다. 구비문학은 종류나 장르에 따라 민중문학으로서의 구체적 성격이 다르다.

민속극은 민중만의 것으로 지배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일관되어 있고, 민요도 민중 자신의 의식을 충실히 반영한다. 그러나 설화나 속담은 민중들만의 것으로 제한되지 않고 지배층이나 지식층이 모두 향유했던 문학이다. 이처럼 종류나 장르에 따라 민중의 범위가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하지만 구비문학은 민중의 문학이란 근본성격을 지닌다. 또한 구비문학은 민족의 문학이다. 구비문학은 대다수 민중이 공유하고 있는 문학이므로 생활 및 의식 공동체로서의 민족이 공유한 문학을 대표할 수 있다.

구비문학은 한 민족이 지닌 문학적 창조력의 바탕으로서, 여러 형태의 기록문학을 산출한 바탕으로서 작용해 왔다. 상층의 기록문학이 민족적 성격을 상실하고 다른 나라 문학에 예속되거나 추종할 때도 구비문학은 민족문학으로서 창조적 역할을 해왔다. 구비문학의 장르에 따라 민족적 성격은 차이가 있으나, 그 내용이 딴 민족과 공통된 것이든 자기 민족만의 것이든 구비문학이 민족의 생활과 더불어 발전되고 민족적 창조력의 바탕으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구비문학은 말로 된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이 아닌 말은 제외되고, 말로 되지 않은 문학도 제외된다. 구비(口碑) 가운데 설화·민요·무가(巫歌)·판소리·민속극·속담·수수께끼는 문학이지만, 욕설·명명법(命名法)·금기어(禁忌語) 등은 문학이라 할 수 없다. 무가는 주술적인 목적에서 신을 향해 구연되지만 신이라고 설정된 대상은 결국 인간이 투영된 것이므로 그것은 인간적 감정의 표현으로 주술성과 함께 문학성을 지닌다. 속담은 지혜 또는 교훈의 비유적인 압축이므로 문학적 형상화의 한 예이다.

수수께끼는 말놀이이긴 하나 문학적 표현을 통해서만 성립하므로, 문학의 영역에 포함된다. 구비문학은 말로 된 문학이지만, 실제 구연되는 것을 채록하여 기록한 것도 구비문학의 일시적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므로 구비문학에 포함된다. 그러나 구비문학 자료를 모태로 개작된 문학은 구비문학이 아니다. 문헌설화는 기재된 구비문학이지만 채록본(採錄本)과는 달리 구비문학의 특성이 결여된 화석화(化石化)한 구비문학이다. 이에 관한 연구는 기록문학에 관한 연구이며, 이들 자료도 구비문학에서 제외된다.

참조항목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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