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창

공진창

[ 貢津倉 ]

요약 조선시대 충남 아산군 공세리(貢稅里)에 설치한 조창(漕倉).

세조 때 설치되어 충청도 40여 고을의 세곡을 조운(漕運)하였다. 처음에는 공세곶창(貢稅串倉)으로 불렸는데, 이때에는 창사(倉舍)가 없어 연해안 포구에 세곡을 쌓아두었다. 1523년(중종 18) 비로소 80칸의 창사를 마련하고 창고의 이름을 공진창이라 하였다.

11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목천 ·연기 ·천안 ·온양 ·전의 ·청주 등 인근 고을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였다가, 3월 10일 안으로 경창(京倉)에 조운하였는데, 운송항로는 남양 ·인천의 연해안을 지나 강화수로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이었다. 세곡의 운송을 위하여 적재량이 800석인 조선(漕船) 15척을 보유하였으며, 포(布)를 납부하는 조군(漕軍) 720명이 배속되었다. 아산현감이 세곡을 안전하게 운반하도록 감독하였으며, 해운판관이 충청도 ·전라도의 조운업무를 총관리하였다.

조선 후기에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충청도도사가 겸임하였다가, 1762년(영조 38) 이후 아산현감이 직접 주관하였다. 17세기부터 세곡을 포 ·돈으로 대신 내거나 임운(賃運)으로 직접 경창으로 운반함에 따라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어, 1638년(인조 16)경에는 6개 고을의 세곡만이 조운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조창 자체가 혁파되었다. 평시에는 고직 2명이 배치되어 창고를 간수하였다.

공진창 본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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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항목

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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