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석장리 유적
[ Archaeological Site in Seokjang-ri, Gongju , 公州 石莊里 遺蹟 ]
- 요약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1990년 10월 3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석장리선사유적지
지정종목 | 사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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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0년 10월 31일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 98번지 외 15필지 |
시대 | 구석기시대 |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
1990년 10월 3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장암리의 금강(錦江) 북안에 위치한 이 유적은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연세대학 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유적으로 한국 구석기시대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지질층은 강바닥 ·강가 ·비탈 쌓임층으로 나뉘며, 아래 쌓임층들은 두 개의 다른 간빙기(間氷期)와 제4빙기(第四氷期)에 쌓인 것으로 밝혀졌다. 강가 쌓임층의 맨 위층에서 나온 나무뿌리테가 따뜻한 기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려주며, 나무숯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5만 270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비탈 쌓임층의 1호 집터에서 나온 화덕의 재는 2만 830년 전의 것임을 알려주었으며, 맨 밑의 강바닥층은 30~50만 년 전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12~14개의 문화층은 아래층으로부터 돌감[石材]과 석기 만드는 수법이 발달되어온 과정을 보여준다.
석기의 특징으로 볼 때 전기의 곧선사람들은 차돌과 편마암을 거칠게 떼어내어 외날찍개 ·안팎날찍개의 무거운 석기를 만들었고, 중기의 슬기사람들은 이 밖에 반암(斑岩)도 떼어 좀더 발달한 긁개 ·찌르개 ·자르개 ·홈날 ·톱날석기를 몸돌과 격지석기로 만들고 돌려떼기 수법도 쓰게 되었다. 후기의 슬기슬기사람들은 아주 발달한 대고떼기(간접떼기)-돌날떼기 수법을 썼으며, 돌날자르개 ·돌날긁개 ·돌날밀개 ·돌날새기개 등을 만들어 세밀하고 정밀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돌감도 검은유리돌[黑曜石]과 수정을 멀리서 가져다 쓴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구석기인들은 집을 짓고 불을 피우며 살았는데, 여름철에는 화덕을 집 밖에, 겨울철에는 집안에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집터 안에서 나온 머리털을 분석한 결과 지금 인간의 머리카락과 같았음을 알게 되었고, 땅바닥과 벽에 홈을 파서 새겨놓은 고래상과 돌을 떼어내어 아가미 ·눈 ·비늘들을 새겨 만든 물고기상이 나왔다. 이들은 둥글납작한 자갈돌에 새기게 끝으로 선을 그어 그림을 그린 것을 통하여 슬기슬기사람들의 예술성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모래돌을 여러 차례 문지르고 그어서 불을 피우는 데 썼던 돌도 나왔다. 이 위층에 중석기(中石器)시대의 얇은 층이 덮여 있는데, 잔돌날[細石刃] ·잔돌날몸통[細石刃核] ·잔새기개 ·잔긁개들이 출토되어 중석기시대의 문화가 발달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역참조항목
제원 사기리 유적, 대한민국 고조선과 원삼국시대, 한국의 구석기시대, 한국의 구석기시대문화, 둔산 선사유적지, 슴베찌르개, 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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