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

공습

[ air raid , 空襲 ]

요약 공중으로부터 군사목표나 비군사목표를 습격하는 일.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체펠린 비행선에 의한 런던 공격이 최초의 공습이었으나, 당시의 공습은 규모나 효과면에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항공기의 급속한 발달로 공습(전략폭격)이 최고의 전쟁 수단이라는 공습만능 사상까지 생겨났으며, 이탈리아의 도우에 장군이나 미국의 미첼 장군은 다음과 같은 전략사상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① 항공기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며 이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는 생각할 수 없다. ② 공습의 주목표는 군사시설이 아니라 공업이나 인구의 중심지이다. ③ 인구밀집 지역에 대한 폭격으로 시민의 사기는 분쇄된다. ④ 전쟁에서 항구적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적국의 전쟁능력을 파괴하여야 하며 적국의 중추부에 대한 폭격에 의해서 그 목적을 극히 단시간 내에 달성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교전국간에 대규모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도우에나 미첼의 예언은 적중하지 않았다. 독일의 영국에 대한 폭격은 그 규모에 있어서 공습만능론자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으나 국민의 사기나 생산력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하였고,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공습도 1943년 1월부터 3개월간에 120만 t의 폭탄을 투하하였으나 역시 독일의 전력을 파괴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였다. 일본의 경우도 그 생산력을 저하시킨 주요 원인은 공습보다는 해상 봉쇄로 인한 연료와 원료의 고갈에 있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출현한 원자폭탄으로 말미암아 공습의 가치는 급변하였으며 일본의 항복이 촉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 나타난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의 진보로 공습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걸쳐서, 만약 미국과 소련이 전면적인 핵공격을 교환했다면 양쪽이 다같이 총인구의 거의 반수인 1억 내외의 사망자를 내고, 공업력의 태반이 파괴되었을 것이며, 전쟁수행 능력의 상실은 물론 근대국가로서의 존재까지 말살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30년대의 도우에나 미첼의 예언이 비로소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인류 전체의 파멸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 같은 공격은 어떠한 전쟁 목적에도 실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6 ·25전쟁이나 월남전 같은 제한전쟁에서는 공습의 효과는 결정적인 것이 못되었고, 특히 비정규전에서는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나, 67년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의 선제공습이 전쟁의 승패를 초전(初戰)에서 결정짓는 효과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중의 전형적인 공습으로는 군사목표에 대한 진주만 공격과 일본 본토에 대한 전략폭격을 들 수 있다. 진주만 공격은 41년 12월 8일(현지 시간 7일 아침)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 군항에 대하여 일본 해군항공기 360대가 기습공격을 가한 것으로, 이때 미해군 전함 5척, 경순양함 1척, 기타 2척이 침몰되었으며, 항공기 480대가 파괴되었다. 일본 본토에 대한 미국의 전략폭격은 개전(開戰) 이래 인원 살상 약 67만, 이재민 1,400만 명을 내게 하였으며, 이 공습에 참가한 항공기는 45년 1월부터 8월 13일 사이에만 B-29 폭격기 연 1만 5,500대, 함재기 약 2만 1,000대에 이르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