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물

공물

[ 貢物 ]

요약 중앙정부와 궁중(宮中)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지방에 부과하여 상납하게 한 물품.

공납제가 비롯된 시기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으나, 주로 베[麻布] ·비단 같은 직물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고려시대 이후에는 농산물 ·수산물 ·광산물 등 각종 토산물을 상공(常貢)과 별공(別貢)으로 구분하여 군현단위로 그 종류와 액수를 부과하였고, 각 군현에서는 다시 이것을 남자 장정수를 기준으로 하여 백성에게 분담시켰다.

상공은 지방의 생산물 가운데 품목과 수량을 정해놓고 해마다 그대로 상납하도록 하는 것이고, 별공은 임시적인 특별과세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 특산물을 지정해서 필요할 때마다 내게 하였다. 고려시대 상공으로 정해진 품목으로는 쌀 ·좁쌀 ·황금 ·백은 ·베[布] ·백적동(白赤銅) ·철 ·꿀 ·쇠가죽 ·쇠심줄 등이 있고, 별공으로는 금 ·은 ·동 ·철 ·종이 ·먹 ·실 ·기와 ·숯 ·소금 ·도기 등이 있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후 1392년(태조 1)에 공부상정도감(貢賦詳定都監)을 설치하여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하고, 남자 장정수를 기준으로 하던 고려시대와는 달리 토지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부과하였다. 이것은 농사기술이 발전하여 농업생산력이 증대하고 토지측량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가능하였다.

조선 전기의 공물은 크게 일반공물 ·약재 ·종양약재(種養藥材)의 세 종류로 나뉘어진다. 일반공물은 그릇 ·직물 ·종이 ·자리류 등의 수공업품, 광산물, 수산물, 모피류, 수육류, 과실류, 목재류 등 모두 271품목이고, 약재 ·종양약재의 품목도 200종이 넘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가 그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역별 품목수를 보면, 전국에서 그 수가 제일 적은 함길도 ·평안도가 130여 종류이고, 가장 많은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는 모두 250여 종류였다. 이 중 약재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일반공물의 품목수를 도별로 비교해 보면 전라도가 112종으로 가장 많고, 함길도가 26종으로 가장 적었다. 그러나 공물의 수량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서 어느 지역의 공물 부담이 더 컸는지는 알 수 없다. 각 지역마다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품목이 있었는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무명, 평안도 ·황해도의 명주, 함경도 ·강원도의 베, 강원도의 목재, 황해도의 철물, 전주 ·남원의 종이, 임천 ·한산의 생모시, 안동의 돗자리, 강계의 인삼, 제주도의 말 등이다.

공납제가 일단 정비된 성종대에는 공물은 각 관서의 수요에 최소한으로 따르는 원정공물(元定貢物:元貢)과, 전세의 일부로서 명주 ·무명 ·기름 ·꿀 등을 거두는 전세조공물(田稅條貢物:田貢)로 이루어져 진상 및 다른 잡부(雜賦)와는 구별되었다. 원정공물은 관청에서 마련하는 것과 민간에서 부담하는 것이 따로 정해졌다. 민간에서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직물류 ·수산물 ·과실류 ·목재류 등은 백성에게서 거두고, 모피류 ·수육류 및 재배한 약재 등은 민호에 배당하지 않고 지방관청에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공물의 품목과 수량이 다시 늘어나면서 농민의 부담 자체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을 징수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한 저장 ·수송 ·검사에 까다로운 어물과 고급 수공업품도 많아졌다. 이와 함께 수시로 부과하는 별복정공물(別卜定貢物)도 많아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 백성이 공물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고, 상인과 아전들이 물품을 대신 납부하고 몇 배에 달하는 대금을 농민으로부터 받는 대납(代納) 및 방납(防納)의 폐단이 심하여졌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17세기 초 대동법을 실시하여 공물의 상납을 폐지하고, 그 대신 토지 1결마다 쌀 12말씩 거두어 그 중 일부를 공인(貢人)에게 지급함으로써 종전의 공물을 조달하게 하였다.

이후 공물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소수만 남아 존속하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조세를 금납화(金納化)하면서 현물을 직접 납부하는 형태는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