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탈

고려탈

요약 고려시대에 팔관회(八關會)·나례(儺禮) 등 행사 때 탈놀이에서 쓰던 가면.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때 시작되었으며 장막을 두른 무대를 만들어, 여기에 백희(百戱)와 가무(歌舞)를 올려 복을 빌었다. 이 팔관회는 고려에도 이어졌다. 장막을 두른 무대는 산대(山臺)라고도 하였으며, 오늘날의 산대놀이의 산대란 말은 이때 처음 나타났다. 산대놀이는 바로 탈놀이이고, 그 연원은 고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때의 팔관회에서는 용(龍)·봉(鳳)·상(象) 놀이가 나오며, 이것은 용·봉·코끼리의 탈을 쓰고 하는 탈놀이[假面戱]로 볼 수 있다. 100가지 놀이[百戱] 속에는 처용무(處容舞)도 들어 있으며, 이것도 탈춤이다.
고려에서는 나희(儺戱)도 행해졌다.

고려탈에 대해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시대에 행해진 많은 놀이 중에서, 탈놀이를 시사하는 기록은 곳곳에 있다. 따라서 고려에서도 탈은 상당히 발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대에 사용하였다는 탈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하회(河回)탈이 바로 고려탈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이것은 탈 제작에 대한 전설에서 유추된 의견이다.

이 탈은 허(許) 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하회는 바로 조선 선조 때의 명신 류성룡(柳成龍)의 마을이다. 하회탈을 허 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로 보아, 허씨들이 이 마을에 살았던 고려 중엽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하나의 방증이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의 산대놀이 같은 것도 그 연원을 고려의 산대희(山臺戱)나 산대색(山臺色)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조항목

가면, 나례

역참조항목

고려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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