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완숙

강완숙

[ 姜完淑 ]

요약 조선 천주교회 초창기의 순교자로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왕족의 부인 등 많은 여자들을 입교시켰다. 자선사업에도 힘써 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출생-사망 1761 ~ 1801
별칭 세례명 골롬바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충남 내포(內浦) 지방

세례명은 골롬바이다. 충청남도 내포(內浦) 지방에서 향반(鄕班)의 딸로 태어나, 덕산(德山)에 살고있던 홍지영(洪芝榮)의 후처가 되었다. 강완숙이 천주교 신자가 된 계기는 남편의 친척으로부터 가톨릭 교리를 전해듣고 입교하였고도 하며, 《천주실의》를 통해 천주교 교리에 감복하여 신자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때 감옥에 갇힌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체포되어 공주(公州)감옥에 투옥되었다. 하지만 양반의 부녀자였기에 처벌을 받지 않고 석방되었다. 남편과 떨어져 시어머니와 자식만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하였다. 그 후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로부터 세례를 받고, 조선 천주교 여회장(女會長)을 맡아 포교활동을 전개했다. 왕족이었던 은언군(恩彦君)의 부인 송(宋)씨와 그 밖의 많은 여자들을 입교시키는 한편, 자선사업에도 힘써 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조정에서 체포령이 내린 주문모를 3년간 자신의 집에 숨겨 주었다. 1800년 천주교에 비교적 온건했던 정조가 사망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신유대박해(辛酉大迫害)가 일어났다. 1801년 2월 24일 아들 홍필주와 함께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붙잡혀, 주문모 신무를 자신의 집에 은닉하고 천주교 포교의 괴주로 취조받으면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주문모 신부가 의금부에 자수하여 한강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치마폭에 주문모 신부의 업적을 기록하였다는데 현존하지는 않는다. 강완숙은 같은해 5월 23일 서울 서소문(西小門) 밖에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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