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사람에 대해 아주 주관적인 나의 느낌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도움이 되실른지 모르겠군요.
[플라톤]
서구 이상주의 철학의 대철인인 플라톤의 대화편은 서사시처럼 아름답다.
그의 사상이 기독교 교부 철학의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기독교 교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심오하고 다양한 사상의 힘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가 서양 철학에 끼친 영향력은 비할 데 없이 깊고 넓다.
오죽하면 현대 미국 철학의 거봉인 화이트 헤드가 "서양의 철학사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 철학 자체가 경이로움이지만 수많은 학문에 모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박학다식함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는 스승인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경향을 보완이라도 하는듯이 현실주의적 학풍을 확립했고 플라톤이 관념적 사상이라면 그는 경험적인 과학적 합리성이 돋보인다.
스승과 제자의 이 경향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 정곡을 찔러 표현되어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누구나 바라마지 않을 듯한 대학 교수직도 자기의 자유로운 사색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지인들의 물질적 지원도 거절한 채 안경알을 갈며 청빈한 생을 살다가 안경알 연마 때문에 생긴 먼지로 인해 사망한 스피노자의 인격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지고한 것이라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의 성실성은 유명한 그의 " 내일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말에서도 느낄 수 있는 바이다.
나는 그의 학설을 전적으로 찬동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없는 시대의 한계이리라.
그러나 그의 인품의 고결함은 인류가 멸망하는 그날까지도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리라고 믿는 바이다.
[로크]
[흄]
불과 00세에 지나지 않은 그가 제기한 인식론적 회의는 칸트를 독단론의 미몽에서 벗어나게 할만큼 날카로와 그 주장이 현대에 와서도 살아있다.
그러나 그는 사유의 뿌리를 경험론이라는 단순한 토양에 두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한계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어쨌든 여러 명의 경험론자 가운데에서는 내가 가장 주목하는 한 사람인 점에서 나는 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칸트]
많은 사람들이 칸트를 비판하고 나섰다. 칸트를 비판하므로써 자신이 칸트보다 더 위대해지기나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이 과연 칸트를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가? 칸트보다 훨씬 저열한 이론으로 그를 비판한 것은 아닌가?
철학사에 있어서 칸트는 전무후무?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불멸의 업적을 쌓았다. 그의 학설의 세부의 어느 곳에 다소간의 결함이 있다고 해서 그의 가치 전체를 매도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다름이 없으리라.
그러나 칸트로서도 인간적인 약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데 그의 노복이었던 람페에게 반드시 붉은 옷만을 입게 한 것은 그의 주장인 "인간을 동시에 언제나 목적으로써 대우하라"는 지고한 도덕률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보옥의 사소한 티다. 사소한 티 하나 때문에 보옥 전체의 값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론은 이론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그의 인격과는 직접적인 관련을 지을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
불행안 사람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동정심이나 인류애는 이상적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하려던 그의 유물사관은 지금 비가 줄줄 새는 낡은 집이 되었다. 그의 예언은 빗나갔으며 그의 이상을 실현하려던 국가들은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중국을 빼고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두 가지 결함 때문이다.
첫째로 그처럼 고매한 이상은 개인의 자기 도덕에 머물러야 하며 타인에게 , 더구나 물리적인 힘으로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인데도 그는 그것을 제도적 이데올로기화했다. 이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둘째로 그의 이론이 유물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계는 단순히 물질적인 요소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유물론적인 사유 방식으로 세계를 관조하므로써 또 하나의 극히 중요한 요소인 정신적인 요인을 간과한 것이 치명적인 결함이었다고 나는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