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처

플레처

다른 표기 언어 John Fle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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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79. 12. 20, 잉글랜드 서식스 라이에서 세례받음
사망 1625. 8. 29,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제임스 1세 때 활약한 영국의 극작가(제임스 1세 시대 문학).

1606~25년경 프랜시스 보몬트 등 극작가들과 협력해 많은 희극과 비극 작품들을 남겼다.

아버지 리처드 플레처는 존이 태어난 구역의 교구 목사였다가, 나중에는 궁정 목사, 피터버러의 주임 사제, 그리고 이어서 브리스틀, 우스터, 런던 등지의 주교를 역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재판 때 그녀에게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가차없이 그녀의 처형을 집행함으로써 유명해진 사람이었다. 채 12세도 되지 않아 케임브리지대학교 베네트 칼리지(지금의 코퍼스크리스티 칼리지)에 자비생으로 입학했던 것이 분명하며 2년 뒤에는 성서 낭송을 맡은 장학생이 되었다.

1596년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 1607년까지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의 후기 작품들을 통해 그가 아버지의 종교적 편협성을 물려받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1607년 4절판으로 출판된 벤 존슨의 〈볼포네 Volpone〉에서 그의 이름이 보몬트와 연관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의 헌사가 모두 여기에 실려 있다.

플레처는 1607년경부터 보몬트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칠드런 어브 더 퀸스 레벌스'라는 극단을 위해 일하다가, 1609(1610)년경부터 보몬트가 은퇴하던 1613(또는 1614)년경까지 주로 글로브 극장과 블랙프라이어스 극장에서 킹스 멘 극단을 위해 일했다. 그뒤 1613년경부터 필립 매신저의 도움으로 기존 작품들을 개정하는 등 함께 일했는데, 1625년 매신저는 그의 뒤를 이어 킹스 멘 극단의 수석 극작가가 되었다.

그밖에 플레처가 함께 일한 극작가로는 너새니얼 필드와 윌리엄 롤리가 있다. 또한 그는 독자적으로 작품을 썼다. 1625년 런던에 전염병이 유행했을 때 시골로 피신하지 않고 옷을 맞추려고 도시에 남아 있다가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1679년 2절판으로 인쇄된 〈50여 편의 희극과 비극… Fifty Comedies and Tragedies …〉에 실린 52편의 희곡은 통상 보몬트와 플레처의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52편 중 〈대관식 Coronation〉이라는 작품은 제임스 셜리의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에는 수록되지 않은 3편의 희곡인 〈헨리 8세 Henry VIII〉·〈존 반 올던 바너벨트 경 Sir John van Olden Barnavelt〉·〈진짜 여자 A Very Woman〉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54편의 희곡 중 14편 정도가 보몬트 개인의 작품이거나 보몬트와 플레처의 공동작이다. 그밖에 40편은 플레처가 독자적으로 쓰거나 보몬트 이외의 다른 극작가들, 다시 말해 그중에서도 특히 매신저와 협력해 쓴 희곡들이다.

보몬트와 플레처가 협력하여 쓴 작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필래스터 Phylaster〉·〈소녀의 비극 The Maides Tragedy〉·〈A King and No King〉을 살펴보면 그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작품의 경우, 셰익스피어나 존 채프먼 또는 존 웹스터의 작품에서는 찾기 어려운 플레처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그 특징으로는 가상적 역사에 근거한 이국적이고 동화적인 배경, 대단한 감정적 가락을 갖는 웅변조의 수사(修辭)로 치닫는 선명하고 부드러운 대사, 작중 인물들에게 처절한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면서도 여전히 작품 결말 부분의 행불행을 작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짜여져 있는 놀랍고도 색다른 구성을 들 수 있다. 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상태를 정형화하고, 통괘한 장면을 마음대로 연장할 수 있도록 인물 묘사의 일관성과 개연성을 과감하게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도 그 특징이다.

플레처가 독자적으로 쓴 희곡 중 6편의 작품은 그가 완성한 중간 장르(middle kind)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때 6편의 작품이란 〈실성한 연인 The Mad Lover〉·〈충신 The Loyall Subject〉·〈익살맞은 중위 The Humorous Lieutenant〉·〈즐거워하는 여인들 Women pleas'd〉·〈섬의 왕녀 The Island Princesse〉·〈아내 노릇 1개월 A Wife For a Moneth〉을 말하는데, 이들 모두는 1616~24년경에 씌어진 것들이다. 이들 작품 하나하나는 의외의 상황과 극단적인 태도를 강렬한 웅변조의 대사를 통해 연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충신〉·〈아내 노릇 1개월〉은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데, 특히 후자는 현란한 수사와 장황한 대사가 가득한 작품으로서, 기이한 남녀 관계를 교묘한 방법으로 신랄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극중 인물들을 개성을 지닌 개별적 인간보다는 선악의 상징으로 제시하는 플레처의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플레처의 희극 중 최고 걸작은 아마도 세련되고 일관된 어조가 돋보이는 〈헛된 시도 The Wild-Goose Chase〉일 것이다. 이 극은 여러 에피소드를 연결해놓은 것으로 구성상의 교묘함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러니와 가벼운 재치로 인해 생기가 넘치는 작품이다.

끝으로 플레처가 보몬트 이외의 작가들과 협력하여 쓴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Wit at Several Weapons〉는 미들턴이 거의 대부분을 쓴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이다. 한편 보몬트 역시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The Captaine〉은 남녀간의 관계를 다룬 복잡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비극적 딜레마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작품으로 〈거짓된 사랑 The False One〉·〈거지들의 숲 The Beggars Bush〉을 수작으로 꼽을 수 있다.

전자는 혹자에 따라서는 매신저의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독창적이고 예리하며, 상당히 섬세하게 처리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존 드라이든의 〈모두 사랑 때문에 All for Love〉의 창작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원극의 한 변형'인 〈거지들의 숲〉은 폭군보다는 시골 거지가 되는 것이 차라리 더 좋은 일이라고 청중들을 기분좋게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에서는 현대 비평이 플레처 작품의 특징이라고 강조하는 요소들을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