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2세

해럴드 2세

다른 표기 언어 Harold II 동의어 고드윈의 아들 해럴드, Harold Godwineson
요약 테이블
출생 1020경
사망 1066. 10. 14, 잉글랜드 서식스 헤이스팅스 근처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잉글랜드의 마지막 앵글로색슨계 왕.
Harold Godwineson(Godwinson)이라고도 함.

해럴드 2세(Harold II)
해럴드 2세(Harold II)

강력한 통치자이고 노련한 장군이었으나, 정복왕 윌리엄 휘하의 노르만 침략자들과 싸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써 9개월간의 재위를 끝마쳤다. 해럴드의 아버지인 고드윈은 웨식스 및 켄트의 백작으로 참회왕 에드워드(1042~66 재위)의 통치 초기에 왕국 내에서 최대의 세력가였다. 1044년경에 고드윈은 해럴드를 위해서 이스트앵글리아 백작령을 확보했다.

1051년 에드워드 왕은 왕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고드윈과 그 자식들을 추방했으나, 해럴드는 군대를 이끌고 1052년 잉글랜드를 공격하여 왕에게 압력을 넣어 가문의 복권을 이룩했다.

1053년 고드윈이 죽자, 해럴드는 아버지의 백작령들을 승계하여 국내에서 막강한 세력가가 되었다. 1057년경에는 토스티그·기스·레오프윈 등 세 동생을 위해 백작령들을 획득했다. 그의 유일한 경쟁 상대는 머시아의 레오프릭 가문이었다.

레오프릭의 아들로 추방당한 엘프가는 웨일스의 지원을 받아 머시아를 습격했다. 그 보복으로 해럴드와 토스티그는 1063년 웨일스를 정복했다. 1065년 노섬브리아인들은 자기 지방의 백작인 토스티그에 반기를 들었다. 반란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여 해럴드는 토스티그의 백작령을 머시아의 모카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해럴드와 토스티그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되었지만 해럴드의 위치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참회왕 에드워드는 임종시에 해럴드에게 왕위계승권이 있음을 인정했던 듯하다. 그렇지만 에드워드는 일찍이 노르망디 공작 기욤(윌리엄)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더욱이 해럴드 자신도 노르망디 해안에서 난파당했을 때, 윌리엄의 요구를 지지하기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에드워드가 죽고(1066. 1. 5) 해럴드가 집권하자 즉각적으로 윌리엄과 또다른 왕위계승 요구자인 노르웨이 왕 하랄 3세와 토스티그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5월 해럴드는 윌리엄의 예견되는 침공에 대비해서 해군과 육군을 동원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남·동해안에서 토스티그의 습격을 격퇴하기 위해 부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9월초에 부하들을 해고했다.

따라서 윌리엄은 아무 저항 없이 영국해협을 횡단할 수 있는 상태였다. 토스티그와 하랄 3세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잉글랜드를 습격했지만, 9월 25일 요크 근처 스탬퍼드브리지에서 패배하여 해럴드에게 살해되었다. 3일 후 윌리엄이 잉글랜드에 상륙하자 해럴드는 10월 14일 헤이스팅스 근처에서 윌리엄을 공격했다. 하루종일 벌인 접전에서 해럴드 왕과 기스·레오프윈은 전사했다. 윌리엄이 윌리엄 1세로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것은 영국사에 있어 앵글로색슨 왕조의 종언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