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에드워드

다른 표기 언어 Ed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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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003경, 잉글랜드 이즐립
사망 1066. 1. 5, 런던
국적 잉글랜드

요약 1161년 성인으로 추증되었으며 축일은 원래 1월 5일이었으나 지금은 10월 13일. 잉글랜드의 왕(1042~66 재위).
별칭은 참회왕 에드워드(Saint Edward the Confessor).

에드워드(Edward)
에드워드(Edward)

그는 정치에 무관심했고 강력한 귀족들의 그늘에 가려 통치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경건한 신앙심을 가졌다. 사실상 그의 왕권은 그의 신앙심 때문에 백성들의 인정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노르망디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노르망디 공작 기욤(뒤에 잉글랜드의 정복왕 윌리엄 1세)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게 되었다(1066). 에드워드는 잉글랜드의 왕 에설레드 2세(968~1016 재위)와 노르망디 공작 리샤르 2세의 딸 에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1013년 데인족이 잉글랜드를 침공하자 에설레드의 가족은 노르망디로 피신했으며 이듬해 에드워드는 사절들을 거느리고 잉글랜드로 돌아와 에설레드를 복위시키는 조약을 협상했다. 1016년 에설레드가 죽은 뒤 데인족이 다시금 잉글랜드의 지배권을 차지했으며 에드워드는 이후 노르망디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1041년 이부 형제인 왕 하레크누드의 런던 궁정에 돌아온 에드워드는 1042년 왕위를 계승했으며 한때 자신의 계승을 반대했던 어머니 에마의 재산을 차지했다. 그러나 치세의 첫 11년간은 웨식스 백작 고드윈이 실권을 휘둘렀다.

에드워드는 1045년 고드윈의 딸 이디스와 결혼했으나 1049년 고드윈과 반목하게 되었다. 1051년 에드워드는 고드윈 가문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선포하고 이디스를 쫓아냈다. 이 기간에 에드워드는 노르만족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정부의 고위직을 주어 자꾸 인기를 잃고 있었다. 1053년 고드윈이 자신의 아들들과 힘을 합쳐 왕의 반대세력을 규합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을 돌려달라고 에드워드에게 강요했으며 에드워드가 총애하는 외국인들의 대다수를 추방했다. 고드윈이 1053년 죽자 그의 아들 해럴드가 잉글랜드의 지배권을 쥐게 되었다.

1063년 웨일스를 복속시키고 1065년 반란을 일으킨 노섬브리아인들과 협상을 한 것은 에드워드보다 해럴드의 공이 컸다. 결국 임종의 자리에서 에드워드는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 노르망디 공작 기욤(윌리엄)에게 왕위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후 서식스의 헤이스팅스 전투(1066. 10)에서 윌리엄은 해럴드를 죽인 뒤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