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

한국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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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넓게는 한국에서의 춤 일반을 뜻하고, 좁게는 전통사회의 춤과 이를 이어받은 한국적 특성을 지닌 춤양식.

목차

접기
  1. 전승
  2. 갈래
  3. 전통춤의 특성

한국에서의 춤 일반은 상고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춤의 역사적 맥락을 수직적으로 고찰하는 통시적 관점과 현재의 다양한 춤현상을 공시적 관점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넓은 뜻의 한국춤은 한국 전통의 고유한 춤뿐 아니라 중국 남북조·수·당 및 서역 등에서 들어온 외래춤, 1910년대 이후 일본이나 서양에서 전래된 포크 댄스, 볼룸 댄스, 예술춤으로서 현대춤·발레, 오늘날 대중취향의 각종 오락춤이 포함되며, 이와 함께 춤에 대한 교육문제,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즉 한국춤이라는 넓은 개념 속에는 춤의 한국적 현실이나 상황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한국춤이라 하면 현대춤이나 발레 등 외래적인 것과 대비되는 '한국적' 춤 양식이나 기법을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때의 한국춤은 전래의 춤과 신무용, 오늘날의 '창작 한국춤'을 포괄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기법상 '한국적' 특성을 지닌 것을 좁은 뜻의 한국춤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적 특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판단기준의 문제는 계속 남는다. 예를 들면 넓은 뜻의 한국춤에 포함되는 '한국 발레'와 '한국적 발레'는 각기 지칭하는 대상은 비슷하나 그것이 지닌 미학적 가치 이념의 지향성에 있어서는 강도의 차이가 있다.

한국적 발레는 한국 발레처럼 한국에서 한국인이 추고 즐기는 발레이지만, 한국인의 체질·기질·민족성·품성·정서·세계관 등이 한국적 발레 언어나 양식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을 때만 쓸 수 있다. 말하자면 발레라는 양식 속에 '한국적'이라는 가치 지향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반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는 한국춤의 사회문화사적 판단기준의 문제인 동시에 춤의 미학적 가치평가의 문제이어서 사회문화학적 규범학의 영역에 속한다.

또한 한국춤은 일본춤, 중국춤, 아프리카춤, 서양민족춤 등과는 변별되는 민족춤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민족춤이란 종족춤의 하나로 춤 일반의 보편적인 성격과 민족적 특수성을 아울러 지닌 춤이다. 즉 한국의 민족춤은 한국적 풍토 위에서 생성·전승된 전통춤이 중심이 되며, 이를 계승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한 근대이후의 춤도 포함한다.

국무(國舞)로서 민족춤은 첨예한 계급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양분된 사회구조에서는 민족문화의 토대인 기층문화권 속의 민중춤을 중핵으로 한다. 이때 민중춤의 상층유입과정이나 외래춤과의 접합양상 속에 관통되는 민중적 응전상을 살피는 것이 민족춤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오늘날과 같은 다변화한 현대 사회에서 민족춤은 종족적 특성보다는 민족 주체적 자기동일성에 좀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격을 밝히자면, 일반대중의 사회의식과 민족적 세계관의 반영으로서 춤의 내용 및 사상, 신호체계로서 춤언어, 양식적 차별성으로서 춤형식, 연행 장르의 특수성으로서 연행시공간 등이 과제로 떠오른다. 그리고 진보적 성향의 민족춤은 민족의 현실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변혁운동으로서의 춤을 강조하기도 한다.

전승

한국춤은 상고시대 제천의식에서부터 부족국가시대를 지나 조선 후기까지 공동체적 삶의 방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삼한의 천군(天君) 등에서처럼 군취가무(群聚歌舞)하던 국중대회(國中大會)와, 통일신라·고려의 팔관회·연등회 등 각종 산악백희적(散樂百戱的) 나라굿이 있다. 농촌공동체사회에서 춤은 공동노동·협업조직이자 공동연희·제사조직인 '두레'의 일·놀이·축원의례·편싸움·연예행위 등과 연관된다.

민속춤의 중심갈래는 이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일춤·놀이춤·마당굿춤·싸움춤·걸립춤 등으로 그 기능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이들 두레춤은 풍물의 여러 기능과 통하고, 민속극·민요의 분류 형태와도 맥을 같이한다.

한국춤의 큰 줄기의 하나는 굿춤으로 대표되는 종교의식춤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마을굿에서 추는 춤과 개인의 비나리춤, 궁중정재의 하나인 일무(佾舞), 불교의식춤인 작법(作法), 궁중의 구나(驅儺)행사의 춤이 있으며, 조선 후기 동학의 검결(劍訣), 영가무도(詠歌舞蹈) 등 민족신흥종교의 예배춤도 포함된다.

이들 굿춤의 대부분은 지방의 민속춤을 토대로 상층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처용무(處容舞)는 본래 울주군의 처용굿에서 비롯되어 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넘어가면서 궁중 나례나 연례춤으로 정착되었다. 신라 헌강왕이 추었다는 상염무(霜髥舞)도 지방의 굿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처용무(處容舞)
처용무(處容舞)

그밖에 고대문헌에 나오는 고구려의 지서무(芝栖舞), 백제의 가지산무, 신라 소년 능안의 가야지무(伽倻之舞), 우륵이 지었다는 악무(樂舞), 검기무의 토대가 된 황랑창무, 원효의 무애무(無이미지舞) 등도 지역단위의 민속춤에 바탕을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송나라에서 고려에 유입되어 조선 초기에 궁중연례춤으로 정착된 당악정재(唐樂呈才)는 외래문물의 수용상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이다. 또한 수나라·당나라에서 9부기·10부기의 하나로 뽑힌 고려기(高麗伎)나 이백이 상찬한 광수무(廣袖舞)는 자국의 토대 위에 새롭게 창작되어 세계성을 획득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춤전통은 오늘날 세시풍속으로 남아 전승되고 있다.

18세기 중엽 이후 봉건사회의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새로이 민중의식이 각성되면서 사회문화 전반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광대·이속·상인·몰락양반층 등 새로운 문화담당층이 대두되었는데, 이는 당대의 문화예술이 사회구조의 변화와 좀더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판소리·산조의 형성, 민속화·풍속화의 성행, 사설시조·평민가사·평민소설의 대두, 탈춤의 중흥 등 신흥 민중예술의 발흥과 함께 한국춤도 크게 변화했다. 효명세자(孝明世子)와 김창하(金昌河)는 춘앵전(春鶯囀)을 비롯한 20여 종에 이르는 새로운 궁중정재를 창제했고 사자춤이 궁중정재에 도입되었으며 지방 교방청의 교습춤이 다양하게 정착되었다. 신흥 민중예술의 새로운 동반층은 전문예인과 더불어 민중들의 예술전통과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한편 이를 향유하는 상층의 세계관도 함께 반영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흥 민중예술의 흐름은 자생적인 발전기로 접어들기도 전에 일제강점기와 국토분단의 문화 격변기를 거치면서 다소 굴절된 모습으로 오늘날 전승의 맥을 잇고 있다.

1910년대 서양식 무도회가 귀족사회에서부터 지방 중소도시의 시민·학생들에게까지 퍼지면서 슬라브 계통의 민속춤과 발레가 처음 소개되었다. 소수의 귀족관중을 상대했던 궁중춤이나 기방춤들이 무대공연물로서 일반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율동이 신식교육의 교과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특히 1926~27년 이시이 바쿠[石井漢] 일행의 내한 공연은 서양춤의 충격을 몰고 와 최승희(崔承姬)·조택원(趙澤元) 등이 춤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배구자(裵龜子)는 1929년 9월 첫 무용발표회를 가졌으며, 최승희·조택원이 잇달아 신무용 공연을 가져 전통춤시대에서 근대춤으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했다. 이들은 주로 전래의 민속춤을 소재로 자신의 춤세계를 구축하고 생활놀이춤을 무대예술춤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의 무용은 신무용이라 불렸으며, '서양 그릇에 담은 동양 정신'으로서 새로운 한국춤의 가능성을 짚어본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의 춤은 일본을 거쳐 도입된 서양춤으로서 민족적 미의식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이들 춤은 외형적 아름다움에 치중한 나머지 당대의 민족현실과는 무관한 탈(脫)역사성을 지녔다는 비판이 있다. 같은 시대의 한성준(韓成俊) 역시 신무용에 자극받기는 했으나, 전통춤에 뿌리를 두고 여러 갈래의 민속춤을 정리·창작하여 한국춤 고유의 기맥을 승화된 무대춤으로 승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승무(僧舞)·태평무(太平舞)·학무(鶴舞) 등은 전통춤이 아니면서 이미 근대적인 한국춤의 고전으로서 역사적인 깊이를 획득한 것이고, 이 춤은 한영숙 등에게 계승되면서 한국춤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송범(宋範)은 치열한 현실주의 정신을 담은 작품으로 새로운 한국춤의 지평을 열었다. 김백봉(金白峰)이 1954년 첫 무대에서 선보인 부채춤·화관무는 신무용의 새시대를 연 동시에 새로운 한국춤 창작의 전범을 이루었다. 1950~60년대에는 많은 춤 공연이 이루어졌고 춤 단체가 활성화되었으며 특히 1960년대초부터 대학에 무용학과가 신설되어 많은 춤꾼이 배출되었다.

1970년대라는 근대춤의 형성기를 거쳐 1980년대 중·후반기 한국춤은 양적 확산과 함께 질적변화를 시작하여 1년에 200여 회가 공연되었다. 따라서 공연 공간과 연행 개념이 변모·확충되면서 한국춤·현대춤·발레 등 춤 고유의 양식적 차별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대학교육을 마친 신진세력이 대거 진출하여 다양한 춤 경향을 보였다. 또 무용인들 사이의 자급자족적인 공연 유통구조가 일반 관중에게 개방되면서부터 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변화했고, 춤이 공연예술의 중요한 한 장르로 자리잡게 되었다.

본격적인 직업무용단과 젊은 춤패의 등장, 지역상호간의 교류와 국제적 교류의 확대, 춤 비평의 활성화 등은 한국춤계의 새로운 변화 양상이었다. 1910~20년대가 서양춤에 대한 충격과 더불어 전통춤시대에 한 획을 그은 과도기적 전변기였다면, 1980년대는 근대춤의 60년 역사에 또다른 획을 긋고 현대춤시대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는 춤계의 세대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분단된 국가 속에서 획득된 춤의 긍정적 성과를 통일전망 속에서 함께 거두어낼 민족적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갈래

전통춤은 그 연원, 창작층, 향수층, 지지 기반, 물적 배경, 형태, 내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흔히 궁중춤과 민속춤으로 크게 나뉘는데 이는 전통음악을 분류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또 역사의 시대구분에 따라 원시춤·고대춤·중세춤·근대춤·현대춤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밖에 예술 사조에 따른 구분, 목적·쓰임새에 따른 구분, 연행자의 신분에 따른 구분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전통춤의 한 종목도 빼놓지 않고 자료화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구분으로는 춤이 연행되는 연행 장소에 따라 ① 굿판·판놀음판·일터 등의 마당춤, ② 사랑방이나 도시 상공인의 공청, 풍류방 등의 방안춤, ③ 왕실관아·지방관아·오위영·종묘·문묘·사찰 등의 전정춤 등으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이 분류는 연행 장소 그 자체가 이미 연행의 계기, 춤꾼의 신분관계를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에 분류체계가 지니는 의미연관성의 파장을 함께 고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춤의 갈래를 나누는 데 있어서 문제는 분류방식의 다양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춤이 지니는 여러 가지 속성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전통춤의 특성

악가무일체(樂歌舞一體), 전통춤과 전통음악을 동일한 준거의 틀로 파악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재는 임금에게 재주를 바치는 음악을 지칭하기도 하고, 또 춤을 지칭하기도 한다. 춤·음악·시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시가악무극 일체라고 할 수 있다. 풍물·지신밟기·강강술래·놋다리밟기 등 집단적 가무형태는 물론 구음살풀이, 탈춤의 불림, 무당굿의 사설풀이도 문학·음악·춤·연극 등이 미분화된 원시적인 단계의 것이 아니다. 오늘날 가장 실험적·창조적인 시도의 하나인 총체예술(total art)과 통한다. 이는 개별화되고 고립 분산된 예술 장르를 교류·통합하여 보다 유기적·공동적·개방적인 예술행위를 하자는 뜻이 숨어 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나 예술의 인간 소외를 극복하는 민주적 통합의 진보적 예술이념이 실현되는 한 양상이기도 하다.

'손 하나만 들어도 춤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동작이 거의 없는 듯하면서 그 속에 잠겨 흐르는 미묘한 움직임을 '정중동'이라고 한다. 그것은 수많은 움직임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집중하여 완결시킨 하나의 경지이자 가장 간소한 형태로서 가장 많은 의미를 담아내며,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서 가장 적극적인 것을 전개한다.

이는 사물과 현상의 본질만을 드러내어 추는 춤으로 움직임의 미완성도 완성도 아니며 차라리 그것은 움직임의 최종적인 완성의 극치이다.

한국춤에서 '장단을 먹어주는' 대목은 동양회화의 여백과 같은 것이며 한국음악에서 농현(弄鉉)에 해당한다. 이 대목은 맺힌 것을 풀어주는 이완일 경우도 있고 틀린 것을 맺어주는 긴장일 경우도 있다.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배합으로 풀고 어르고 당기는 데 한국춤의 묘미가 있다.

이는 변화 속의 불변, 불변 속의 변화라는 역(易)사상과 통하고 태극사상과도 통한다. 이렇게 감고 푸는 형식은 춤 한 사위뿐만 아니라 한 작품의 진행구조의 골격을 이루는 수도 있다. 한 묶음에서 다른 묶음으로 흐르는 중간 통로로 땅다짐·몸다짐하는 대목은 한 작품의 전체상을 펼치는 '춤길'을 안내하는 '눈'이다. 삼진삼퇴·삼전삼복·사방치기·근경·고기잡이 등이 그런 예이다. 이는 통과의례의 다리 구실을 한다. '엇박을 타는' 대목은 평범한 순차적 진행구조에 파란을 일으킨다. 이는 엄정한 절제 속의 일탈이며 평상적 흐름에 대한 파격이다.

자연스러운 파격에서 한국적 해학이나 푸근한 웃음이 유발된다. '비껴' 나앉은 멋부림도 일상 속의 파격이고 이는 직선도 곡선도 아닌 부드러운 한국적 선(線)과 통한다. 이런 선은 버선발의 선이나 한삼 소맷자락의 선을 최대한 살리는 한국춤의 선이다. 이는 또한 하늘의 빛과 신명을 어깨에 받아 태극선을 그리면서 이를 원심적으로 사지에 펼치며 오금과 도듬새로 발을 내디디는 한국춤의 매무새와 일치한다. 민중이 꾸밈 없이 마구잡이로 추어대는 소박한 두레춤의 선은 더욱 투박하다.

이는 초가 지붕, 생활용구, 산등성이, 황톳길이 선과 일치를 이루는 한국적 자연주의이다. 따라서 한국춤은 '추는' 것이 아니라 '추어지는' 것일 뿐이다.

한국춤은 멋과 흥의 춤이다. 멋과 흥은 일상성의 자연스러운 파격에서 나오고 제멋대로의 것이며 강렬한 개성의 발휘이다. '타고 노니는' 듯한 자유로운 일탈 속에서 즉흥성은 발휘되고 창조적 개성이 놀아난다. 이는 한치의 변모도 허용하지 않는 일본 예도(藝道)의 가원제(家元制)와 한국춤의 승계방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말해준다.

이처럼 판에 박은 듯이 되풀이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므로 파격적인 불일치가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불일치의 일치이다. 즉흥성·다양성·독자성·공동체적 유대감, 탁월한 표현기량이 전제되어 이미 한통속이 되어 있다. 유형적 공동감 속의 파격성·즉흥성은 경험과학적 공동인식을 뛰어넘어 초월적 이상세계로 진입하는 도정 속에서 가능하다. 줄타기와 작두타기가 이를 잘 상징해준다. 한국인의 이러한 놀이 충동은 완전 무결한 형태에서는 오히려 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므로 너무 빼어난 몸매는 춤꾼으로서 적합하지 못하다.

만만하게 대들만 하고 틈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유발할 때 미적 공감대는 굳게 맺어지고 채워진다. 생활적 시공간 속에 자연적 연륜과 함께 완성되어갈 따름이라는 동양적 예술관과 이는 서로 통한다.

이러한 열린춤의 동기는 연산(連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연산이란 여러 개의 작은 봉우리가 각각 제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커다란 공간 속에 하나의 산맥을 이루는 형국이다. 한국춤은 신명의 춤이다. 신명은 생산적·출산적 정취이자 예술충동이다. 살(煞)이 낄수록 응어리가 깊을수록 신명이 고취된다.

그리고 사람마다 내재되어 있는 자기의 신령이 바로 하늘임을 깨닫고 스스로 육화해낼 때 그는 신명의 대행자가 된다. 현실인식, 현실쟁투, 현실극복, 해소의 틀거리 속에서 분골되는 신명은 처용굿춤의 유감주술성(有感呪術性)을 잘 드러낸다. 새로운 비약적 세계로 진입하는 살풀이로서의 신명은 전투적인 몸짓으로 흥을 감고 푼다는 거드름춤과 깨끼춤, 와무·복무·입무·도약무로 진행되는 탈춤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는 정신적 내용물이자 한국춤길의 춤 정신 그 자체이다. 민중춤에서 보이는 무술적 몸짓, 곡예적 몸짓을 비롯하여 인간육체의 자유해방을 누리고자 하는 문둥춤의 어깨놀림, 고개놀림은 그러한 삶을 영위하는 자의 춤만을 지닌 표현의 정착성과 자유분방함과 역동성이다.

그러므로 한국춤이 정적(靜的)·선적(禪的)·한적(恨的)이라는 말은 한국춤의 일면을 지적할 뿐이다. 병신춤은 병신을 흉내내어 모멸하는 춤이 아니라 춤 출 수 없는 신체불구자의 춤이되 불구에서 정상으로 옮아가는 싸움의 춤이고 불구로서 육체해방·인간해방·사회해방을 성취하는 이땅을 미적 유토피아로 만드는 지극히 인간적인 춤이다.

원효의 무애무는 병신각설이춤을 민중과 더불어 춤으로써 불교의 민중화를 꾀했고 진속일여(眞俗一如)의 경지에 도달했다. 동학의 검결 또한 종교적 신명의 기운을 외세퇴치의 역동성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생명을 되살리는 인간개벽·사회개벽·우주개벽을 꿈꾸는 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