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산토리니

다른 표기 언어 Santorini
요약 테이블
위치 그리스 남동부, 에게 해 남부 키클라데스 제도 최남단
인구 15,500명 (2020년 추계)
면적 76.19㎢
언어 그리스어
대륙 유럽
국가 그리스

요약 에게 해에 있는 그리스 키클라데스 제도 최남단의 섬.

티라
티라

남스포라데스 제도에 포함시키기도 하며 다른 섬들과 함께 키클라데스 주의 1개군(郡)을 이룬다. 지질학적으로 볼 때 티라 섬은 화산이 폭발한 뒤에 남은 동쪽 절반이다. 활 모양으로 구부러진 이 섬의 가장자리와 폭발한 화산의 흔적인 티라시아 섬 및 아스프로니시 섬은 둘레가 60km에 이르는 커다란 석호를 이루고 있으며, 이 석호의 한가운데에는 아직도 활동하는 네아 카메니(신 화산섬)와 팔라이아 카메니(구 화산섬)가 있다.

티라 섬은 대부분 용암과 속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속돌은 이 섬의 주요수출품이다. 적포도주용 포도도 재배한다. 석호는 붉은색·흰색·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300m 높이의 화산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티라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남동쪽의 프로피티스일리아스 산(566m)이다.

이 섬의 주요도시인 티라(현지에서는 '피라'라고 함)는 1956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밖의 마을로는 남쪽의 엠보리온과 피르고스, 석호의 북쪽 어귀에 있는 오이아 항구 등이 있다. 오이아 항구도 1956년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고대에 칼리스테('가장 아름다운 섬')라고 불렸던 티라 섬에는 BC 2000년 이전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BC 1500년경 화산이 폭발하여 이 섬에 살고 있던 생물을 모두 죽였다. 화산의 파편은 남쪽으로 125km나 떨어진 크레타 섬을 덮쳐 크노소스 궁전을 비롯하여 그곳에서 번창하던 미노아 문명을 거의 다 파괴했으며, 크레타 섬의 주민들은 대부분 본토로 이주했다. 그리하여 에게 해의 미노아 문명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화산 폭발이 일으킨 해일이 크레타 섬의 해안과 중심부를 폐허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은 이 재난에 대한 이집트인의 보고서에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BC 1000년경 본토를 떠난 도리아인들이 이 섬에 상륙했다. BC 630년경 티라의 주민들은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아프리카 북해안에 키레네라는 중요한 식민지를 세웠다. BC 308~145년 키클라데스 동맹의 일원이었던 이 섬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보호령이었다. 독일의 한 고고학자가 티라 섬 동해안에서 발굴(1895~1903)한 고대도시 티라의 유적은 대부분 그 시대의 것이다.

1869년 가장 먼저 이 섬을 발굴한 아테네의 프랑스인 학교 발굴단은 티라시아 섬 북단의 속돌 밑에서 중기 미노아 문명, 또는 키클라데스 문명(BC 2000경~1570경)을 보여주는 도시 하나를 발견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발견은 1966년 아크로티리 마을 남쪽에서 시작된 발굴작업에서 이루어졌다. 이 발굴에서는 BC 1450년경 화산이 폭발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화산 파편에 묻힌 채 서 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발견되었다.

아직도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이 도시는 튼튼하게 지은 커다란 다층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집 안은 지중해에서 발견된 미노아 문명의 프레스코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벽화로 꾸며져 있다. 이 도시가 발견됨으로써 청동기시대에 크레타 섬과 티라 섬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도
산토리니 위치